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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토포스’ 이인화 / 고명섭

등록 2017-01-08 18:12수정 2017-01-08 18:59

정유라 시험 조작 혐의로 구속된 류철균은 필명 이인화로 더 알려져 있다. 1992년에 발표된 이인화의 첫 장편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제목은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왕>의 주인공이 1막 4장에서 내뱉은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왕의 탄식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다음에 올 사회를 이야기해주던 삶의 좌표들(…)이 사라진 거대한 사상의 빈 터 위에 나는 서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다시 이렇게 쓴다. “욕망이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미래로 비약시키는 것이다.” 사상의 빈 터 위에서 새로운 모색이나 근원적 성찰을 이야기할 법도 한데 ‘욕망’이라는 단어를 불쑥 끄집어낸다.

문제가 된 이인화의 단답형 시험문제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정신적 귀족주의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기를 거부하고 금지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기에 미리 예측하고 규정할 수 없는 ( )의 성격을 갖는다.” 정유라의 대리시험 답안지에는 ‘아포토스’라고 쓰여 있는데, ‘아토포스’(atopos)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아토포스는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에 부정 접두사 ‘아’(a)가 덧붙여진 말이다. ‘장소 없음’이라고 옮길 수 있다. 장소 없는 사람, 곧 언제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은 가늠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분류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고 사뭇 호기롭게 말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토포스는 문학의 주인공으로서는 매혹적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규범 파괴자이기 십상이다. 이인화는 대학교수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토포스)를 이탈했다. 아토포스 교수의 표면은 우아한 ‘정신적 귀족주의’였을지 몰라도 내면을 채운 것은 그저 ‘욕망’이었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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