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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새 사진의 로망, 맹금을 찾아 / 김진수

등록 2017-01-04 18:31수정 2017-01-04 21:13

김진수
<한겨레21> 사진기자

30년도 더 된 러시아제 미니버스(UAZ-2206)에 몸을 실었다. 모양이 꼭 썰기 전 식빵 모양이라서 일명 ‘빵차’란다. 몽골에서는 푸르공이라 불린다. 러시아제 수입차인 셈이다. 워낙 튼튼하고 힘이 좋아 짐을 가득 실은 채 험난한 비포장도로에서도 거침이 없다. 잔고장이 별로 없지만 혹 차가 멈추더라도 수리가 간단하다. 전자 장비가 전혀 없어 오지로 몰고 다니기 제격이다. 단점은? 결정적으로 차 만들 때 사람이 타야 된다는 걸 깜빡 잊었다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와 차창에 승차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길이 조금만 울퉁불퉁하면 당장 차 천장에 부딪치는 머리를 먼저 걱정을 해야 된다.

지난해 여름, 이 차를 타고 러시아 시베리아와 알타이공화국에서 맹금류 번식지를 찾아 24일 동안 3800킬로미터를 내달렸다. 아주 짧지만 야생동물의 번식에 적당한 여름을 맞은 시베리아에서 국내에선 사라진 검독수리와 흰꼬리수리, 흰죽지수리, 초원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같은 대형 수리류의 둥지를 찾아 나섰다. 새를 좋아하는 생태사진가에게 맹금류는 로망 자체이다. 그중에서도 ‘하늘의 5대 제왕’이라 불릴 만한 녀석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였다. 물론 이들에 필적할 만한 개체로 참수리가 더 있지만, 지구에서 바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인 알타이에는 참수리가 날아오지 않았다.

알타이 고원서 멈춘 러시아제 미니버스(UAZ-2206)
알타이 고원서 멈춘 러시아제 미니버스(UAZ-2206)

원정대 동참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맹금류는 성격이 예민하고 시력이 사람보다 훨씬 좋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번식기 둥지를 찾는 일은 은밀하고 조심스러워야 해 인원을 늘릴 수 없다고 했다. 어렵게 허가를 받아 노련한 두 명의 새 사진가와 시베리아 맹금류 전문가들과 함께했다. 원정 비용도 큰 부담이었지만 결혼 20주년 여행을 위해 모은 정기적금을 아내가 내주었다.

각오는 했지만 야생은 더 거칠었다. 해가 지고 천적 잠자리가 날개를 접기 시작하면 세상은 모기 천국이다. 야외활동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국내서 준비해 간 모기향과 모기 기피제는 약발이 없었고, 두꺼운 겉옷과 양말, 장갑을 꿰뚫고 달려드는 모기 앞에서 새에 대한 열정이 빨린 피만큼 금방 식어갔다.

야영에 익숙하지 않은 두 분의 사진가와 매일 러시아제 텐트를 설치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야영할 때 내린 눈과 추위는 주로 여름옷으로 무장한 한국의 원정대를 꽁꽁 얼려버렸다. 또 첫 원정 탓에 전체 지역을 다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 심도 깊은 사진 작업도 어려웠다.

두 번째 원정. 당연히 떠난다. 국내에서는 번식기에 이들을 볼 수 없고, 알타이 지역에서조차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로망을 만나러.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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