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서울 종로2가에 문을 연 종로서적은 책과 정보가 귀하던 시절 지식의 바다였다. 인터넷 서점과 현대식 북스토어에 밀려 2002년 폐점하기까지 도심지 6층 건물 빽빽한 책의 숲은 숱한 이들에게 꿈과 지식, 젊음의 동의어였다. 휴대전화를 모르던 시절의 약속은 달랐다. 상대가 어디쯤 오는지 알 수 없고 연락할 길도 없었다. 서점은 약속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만남에 사색과 그리움을 보탰다. 여유 있게 도착해 서가를 둘러보며 소설이나 시집을 선물하기도, 친구·연인에게 읊어주고픈 시구를 만나기도 했다. 종로서적이 많은 이들에게 서점 이상의 추억으로 남은 배경이다.
“토요일 저녁의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층계를 내려갔다. 종로서적 입구에 서서 목을 빼고 늦게 오는 친구를 기다려본 사람은 그렇게 친구나 애인을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 것이다.” 김연수는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그 시절 만남과 기다림을 그려냈다.
세계 서점 기행을 하고 책으로 엮은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지난해 7월 “종로서적을 부활시키자”고 주창했는데 최근 종각 네거리 지하에 ‘종로서적’이 문을 열었다. 운영 주체도 다르고 위치와 공간 배치도 다르지만, 적잖은 이들이 추억을 되살린다.
지난 시절 대형서점이 주던 가치를 인터넷 무한 정보 환경에서 ‘종로서적’이라는 추억만으로 되살리기는 어렵다. 인터넷은 무엇에든지 바로 연결해주면서 길 잃어버림과 헤맴, 그를 통한 사색의 여지도 없애버렸다.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 인터넷이 제공하기 어려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지난날 서점이 주던 쓸모없어 보이는 지적 탐색과 체험의 공간을 새 환경에 맞게 제공하고, 고유의 아우라를 만드는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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