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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이명원

등록 2016-12-23 16:24수정 2016-12-23 21:25

이명원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어느 날 우연히 나쓰메 소세키와 이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두 작가 모두 인간에 대한 의혹이 컸을 뿐만 아니라 돈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문학의 정전 중 하나인 <마음>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바는 부친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제자 격의 서술자 ‘나’에게 생전에 부친의 유산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는 선생의 조언이었다. 인륜을 둘러싼 슬픔의 상황 앞에서 ‘돈’ 문제를 확실히 하라니, 처음에는 기묘하게 느껴졌다.

소설가 이상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삶을 산 문인이다.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69’나 ‘제비’와 같은 카페를 경영하면서, 그는 항상 부채 상환 문제에 골몰했고 죽을 때까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까닭인지 이상의 <날개>를 다시 읽어보면, 돈에 대한 이상 식의 양가감정이 두드러진다. ‘골방의 사색생활’을 하고 있던 내가 아내로부터 받은 돈을 모아 다시 아내에게 주니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돈’이 없는 날은 하늘을 원망하기조차 했다는 식의 탄식은 돈과 서비스의 교환관계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차가운 의혹 역시 이 두 작가에게는 일반적이다. 이상이 다른 소설에서 연심이를 끝없이 의심하고 불신을 노골화하는 것이나, 소세키 소설이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을 노골화해, 사회로부터 유폐된 에고이즘에 빠져 있는 인물을 즐겨 묘사하는 것은 유사한 양상이다.

타인에 대한 불신은 자신에 대한 혐오의 뒷면인데 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돈은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데서 자신의 본래성을 드러낸다. 돈만 있다면 어떤 것도 교환 가능하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다. 이른바 교환가치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으로 교환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강하게 확신하기도 한다. 가령 인륜성의 근본을 이루는 부자관계랄지 모녀관계라는 것은 교환될 수 없는 불변적 가치 형태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사랑이나 우정 역시 그렇다. 문제는 그러한 믿음이 붕괴될 때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의 절망을 그의 ‘양자’ 체험에서 찾고 있다. 가족관계란 화폐-상품 관계처럼 쉽게 거래되거나 교환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소세키는 유년 시절 다른 집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파양되는 체험의 반복 속에서, 인륜성의 영역조차 필요에 따라 상품처럼 거래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충격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백부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던 경험이 있고, 이것은 그에게 모종의 정체성의 혼란과 충격을 초래했을 확률이 높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바깥의 나’로 이분화된 자아의 표출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야말로 인간 삶에서 소중한 기쁨이라는 인식이 긍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때, 인간관계 역시 사심 없음의 상태, 순수한 기쁨의 관계로 트여 있을 때, 예외적으로 삶이 쾌적하다고 우리는 흔히 느낀다.

그런데 소세키나 이상이 비관한 것처럼 생활세계의 조직원리 전반이 교환가치로 전락해버린다면 타자와의 관계란 차가운 이해관계의 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돈으로 상품을 사고 팔듯이 인간관계가 유지된다면 사람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불과한 것이다. 두 작가의 절망은 이런 현실에 대한 소설적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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