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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시에예스와 제3신분 / 조일준

등록 2016-12-21 17:22수정 2016-12-21 19:16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무르익던 1789년 5월, 루이 16세가 앙시앵 레짐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1614년 이후 처음으로 소집한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 회의장 모습. 시에예스는 자신이 제2신분(성직자)임에도 제3신분 대표로 삼부회에 참여했으며, 다음달 제3신분들로만 구성된 국민의회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로써 ‘국민 주권’이 탄생하면서 신분사회가 붕괴하고 시민혁명이 시작됐다. 위키피디아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무르익던 1789년 5월, 루이 16세가 앙시앵 레짐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1614년 이후 처음으로 소집한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 회의장 모습. 시에예스는 자신이 제2신분(성직자)임에도 제3신분 대표로 삼부회에 참여했으며, 다음달 제3신분들로만 구성된 국민의회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로써 ‘국민 주권’이 탄생하면서 신분사회가 붕괴하고 시민혁명이 시작됐다. 위키피디아
에마뉘엘 시에예스(1748~1836)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구체제(앙시앵 레짐)가 무너진 1789년부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막을 내린 1794년까지 프랑스 대혁명의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 예수회 성직자이자 뛰어난 법학자였다. 제헌의회 헌법과 프랑스 인권선언이 그의 손에서 정초됐다. 최초로 ‘사회학’(sociologie)이란 용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시에예스는 혁명이 있기 몇 달 전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치 팸플릿을 출간했다. 명쾌한 논리와 선동적 어투로 무장한 책은 혁명의 기운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프랑스는 인구 2500만명의 2%도 안 되는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이 명예와 특권과 부를 독점한 세습제 신분 사회였다. 제3신분(평민)은 “특권 신분이 꺼리는 힘들고 고된 역무를 담당”했다. 군주는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시에예스는 모두 6개 장으로 짜인 책의 절반을 제3신분에 ‘국민 주권’을 부여하는 데 할애했다. 이때 국민은 “동일한 입법부에 의해 대표되며, 공통의 법률 아래 살아가는 구성원 집단”이다. 시에예스는 제3신분을 “구속되고 억압된 전체이되, 특권적 신분이 없으면 자유롭고 번성하는 전체”로 규정했다. 제3신분이 완벽한 하나의 국민임에도,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그 무엇이 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2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에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드러난 사익추구 세습동맹의 무능·무책임·파렴치·부패 행각이 국민 주권을 참담하게 유린하고 있다. 주권자 국민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였다. ‘공통의 법률’에서 일탈한 현대판 귀족 집단이 특권과 면제와 반칙을 누려온 앙시앵 레짐과 결별할 것인가, 아니면 한낱 ‘개돼지’ 칭호로 불리는 제3신분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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