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짐승과 천사,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에 놓인 존재라고 말한다. 자기 안에 화해하기 어려운 두 성향을 함께 지녔다는 것, 이 모순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해서 아주 작은 힘에도 꺾인다. 갈대 하나를 부러뜨리려고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갈대는 생각하는 갈대여서, 생각의 힘으로 온 우주를 머릿속에 품을 수 있다. 인간은 한없이 비참한 존재이면서 더없이 위대한 존재다. 우리는 짐승과 같은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도, 어느 순간에 천사처럼 순수해지고 고귀해진다. 인간은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에서 꺾이고 일어나기를 되풀이하면서 한 계단씩 올라간다. 때로는 미끄러져 무릎이 까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놀랄 만큼 돌연한 도약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국가 공동체도 다르지 않아서, 개인들처럼 인격이 있고 삶의 드라마가 있다. 이 경우에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의 집합적 인격을 대리하는 것은 최고 지도자다. 최고 지도자는 국민의 인격을 단순히 대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준에 맞게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나라의 품격을 높이지만, 지도자답지 못한 지도자는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저급한 지도자는 자신의 낮은 인격을 넘어서는 인격을 용납하지 않는다. 용렬한 지도자 아래서 국민은 물리적으로 탄압당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모욕당한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 현대사에서 우리 국민은 소수의 지도자를 제외하면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국민을 매질로 다스려야 할 가축으로 본 지도자, 국민을 개처럼 죽이고 짓밟은 지도자, 대통령 자리를 사익추구 수단으로만 생각한 지도자, 그리고 국민이 도탄에서 헤매든 말든 환상 속에서 공주놀음에 빠져 그 환상을 위협하는 일체의 비판과 도전을 억누르고 짓밟은 지도자가 우리의 지도자들이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지도자들을 만들어냈고 자격 없는 지도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고 농락하도록 허용했다. 우리가 우리를 모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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