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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야당 지도자들에게 고함

등록 2016-12-12 20:29수정 2016-12-12 20:38

김종구
논설위원

세계 각국 혁명사의 갈피에는 많은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피플파워 혁명의 코라손 아키노, 벨벳 혁명의 바츨라프 하벨, 튤립 혁명의 로자 오툰바예바…. 그러나 2016년 대한민국 촛불 혁명에는 정치 지도자의 이름이 없다. 정치인들은 혁명의 주역이 아니라 엑스트라다. 야당 지도자들은 혁명의 견인차가 아니라 수혜자다.

정권교체는 시대교체 열망의 산물이다. 변화를 갈구하는 국민의 열망을 모으고, 조직하고, 전파하는 것이 야당 지도자들의 임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틈엔가 시대변혁의 열망이 앞서가고 정치는 그 뒤를 따라가는 양상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앞날이 왠지 불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정국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조기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선 고지를 향한 야권 주자들의 치열한 각축전도 시작됐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의 시작”이라고 야당 지도자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촛불 시민혁명의 완수요,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전개될 백가쟁명식 개헌 논의에다, 어지러운 합종연횡, 3자 필승론 따위의 정치 공학 셈법이 난무하면 촛불의 의미는 더욱 퇴색할 것이다.

야권의 각축전은 30년 전의 악몽도 떠올리게 한다. 야당 지도자들은 줄곧 87년 ‘양김의 분열’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나는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가, 혹시 과거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말이다. 낙관과 방심, 성급한 축배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현 시기 야당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시대에 역행하는 ‘박근혜표 정책’의 폐기와 함께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를 해소하는 일이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업은 단지 정권교체 뒤의 과제만은 아니다. ‘정치권력’에 의한 적폐 해소와 ‘시민권력’에 의한 적폐 해소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적어도 헌법재판소 결정 전까지는 적폐 해소가 대선 준비보다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그것은 새 사회 건설을 위한 ‘땅고르기’의 성격도 지닌다. 과제는 많지만 핵심은 언론과 검찰 개혁이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표변의 귀재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권력과의 왜곡된 관계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쇠는 달궈졌을 때 때려야 한다.

원래 시민혁명이 성공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투옥된 정치범들의 석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직된 언론인의 복직마저도 아직은 감감무소식이다. 공정보도 원칙을 지키려는 올곧은 언론인들을 탄압하며 끊임없이 ‘박비어천가’를 불러댄 방송사 핵심부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말이다. 지금 야당 정치인들은 방송 개혁보다는 어떻게 하면 대선 가도에서 방송의 호의를 더 얻을지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편 문제에 이르면 더욱 심각하다. <제이티비시>(JTBC)를 제외한 다른 종편들의 재빠른 변신은 실로 가증스럽다는 표현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종편의 변신은 ‘박근혜 이후’를 위한 생존책일 뿐 막말과 편향, 왜곡과 과장 등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 보도·교양·오락 등 프로그램들의 방송 편성 지침 위반은 물론이고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확보 의무 등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내년 3월에 있을 종편의 재승인 심사에 야당은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가. 여·야·정 협의체 시대에 야당은 ‘법대로 원칙’을 관철할 길도 생겼다. 그런데도 야당은 종편 바로 세우기보다는 종편 환심 사기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다.

검찰 개혁 역시 조직 내 ‘우병우 사단’ 소탕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권력의 향배와 관계없이 검찰이 중립적·독립적으로 움직일 제도적 방안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시민들의 뜨거운 검찰 개혁 요구는 검사장급 이상 직선제 등 혁명적 방안의 적극적 검토 필요성까지 제기한다. 혹시 야권은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하며 검찰을 권력의 칼로 사용하겠다는 유혹에 이끌리고 있지는 않은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은 결코 구호로 이룩되지 않는다. 야당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용기 있게 부딪치지 못하는 한 새로운 세상은 요원한 꿈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지금 실천 가능한 일부터 행동에 옮기는 것이 새 시대 건설의 시작이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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