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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피눈물 / 정남구

등록 2016-12-12 17:12수정 2016-12-12 19:02

98%가 물인 사람의 눈물엔 소금기가 약간 섞여 있다. 눈물 성분을 연구한 이들은 화날 때 흘리는 눈물은 소금기가 더 진하다고 한다. 몹시 슬프고 분할 때 나는 눈물을 ‘피눈물’이라고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조상들은 한을 품고 죽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을,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렸다.

1895년 10월8일 일본인들이 궁궐에 침입해 민왕후를 시해(을미사변)했다. 무력했던 고종은 이듬해 2월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열흘째 되던 날 고종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1894년), 을미사변 관련 반역자들의 처단을 명하면서 이렇게 읊었다.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으로도 그들이 저지른 죄를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다.” 피눈물을 흘렸을 고종의 심정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에는 기월이란 필명의 작가가 쓴 <피눈물>이란 소설이 실렸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달려와 칼과 몽둥이를 휘두른 사태를 겪은 작가가 실제 피눈물을 흘리며 쓴 소설이겠다.

허난설헌(1563~1589)이 쓴 한시 곡자(哭子)는 애절하기 그지없다. “작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올해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프도다, 광릉 땅에 한 쌍의 무덤이 서로 마주하고 일어섰네.” 임신 중이던 허난설헌은 시의 끝에 ‘피눈물이 흐른다’(血泣)고 썼다. 자식 잃은 부모의 눈물보다 더 진한 눈물이 어디 있으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 자리에서 “피눈물 난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직무 정지 3분 전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한 조대환 전 세월호특별조사위 부위원장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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