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술을 마시면 종종 비서실장을 ‘도승지’라 불렀다고 한다. 조갑제씨가 쓴 ‘박정희 전기’를 보면, 박 대통령이 숨진 1979년 10월26일 밤 연회 때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때 또 차지철(경호실장)이 끼어들어 예의 탱크 이야기를 했다. … ‘신민당이고 뭐고 나오면 전차로 싹 깔아뭉개겠어요.’ 대통령은 텔레비전을 끄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도승지 한잔하시오’ 하면서 술잔을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건넸다. 대통령은 술기운이 돌자 김계원 실장을 ‘도승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포도대장’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기구인 승정원 승지들의 우두머리를 도승지라 했으니, 청와대 비서실장을 도승지라 부른 건 틀린 말이 아니다. 승지는 정삼품이지만 왕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니 때론 권세가 정승을 넘어섰다. 임금의 목구멍이나 혀와 같이 중요하다 하여 후설지직(喉舌之職)이라고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도승지’라 부른 걸 기억했기 때문일까.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씨는 자신을 스스로 ‘승지’에 비유했다. 그는 비서실장 시절 “나는 대통령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다. 옛날 말로는 ‘승지’다”라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선 “윗분의 뜻을 ‘받들어’ 한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승지는 왕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건 내시부에서 하면 된다. 왕에게 측근 비리를 간하고, 때론 왕의 부당한 지시를 육조에 전하길 거부한 게 바로 승지였다. 김기춘씨는 청문회에서 “(대면 보고를) 일이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하고, 한 번도 못 뵙는 경우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대통령이 관저에서 뭘 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말도 했다. 비서실장이 조선 시대 승지는 물론이고 내시만도 못했다는 얘기다. 역사상 최악의 도승지가 아닐까 싶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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