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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용서받지 못할 자 / 정남구

등록 2016-12-01 18:49수정 2016-12-02 09:57

정남구
논설위원

슬픔을 풀어놓은 물에 날마다 심신을 절이며 사는 듯한 느낌이다. 바늘로 살갗을 찌르면 차갑고 시퍼런 피가 스며 나올 것만 같다. 세월호 사고가 난 그날 도진 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날 오후,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장면을 보며 나도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다. 해경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전투기라도 뺏어 타고 날아가서 맨머리로 유리창을 들이받아 깨고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었을 부모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다시 눈물이 왈칵 솟는다.

세월호 참사가 몇 가지 불운과 실수가 우연히 겹쳐 일어난 게 결코 아니었음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이 나라가 바로 세월호요, 우리는 강도 같은 자들에게 납치당한 세월호의 승객이었다. 그들의 수장은 우리와는 정신세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더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반드시 그들을 내쫓고 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것이다. 10월25일 첫 담화 이후 세 번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 그는 두 번 ‘사과’를 말했고, 한 번 ‘사죄’를 말했다. 그러나 진정성은 단 한 방울도 스며 있지 않았다. 모든 잘못은 남에게 떠넘겼고, 자신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고 했다.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것인가? 그 거짓된 마음을 지우고,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고도 했다. 용서라고? 도대체 무얼 용서하란 말인가?

1995년에 암울했던 1980년대를 그린 <모래시계>란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 나오는 한 장면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딸한테서 한 남자를 떼놓기 위해 남자를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린 힘센 아버지에게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아버질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아버지는 차가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힘도 없으면서 용서를 하구 말구 해?”

그렇다. 힘도 없으면서 거론하는 용서는 결코 용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비겁한 후퇴, 좌절일 뿐이다. 우리에겐 아직 박 대통령을 용서할 힘이 없다. 힘이 생긴다 해도 용서할 권리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참혹한 시대와 단절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기원전 529~522)가 부패한 재판관을 처벌한 일을 돌이켜보자. 재판관 시삼네스가 돈을 받고 어긋난 재판을 하자, 그의 살가죽을 벗겨 재판관의 의자에 깔도록 했다. 그러고는 시삼네스의 아들인 오타네스를 재판관으로 임명했다. 사악한 자를 단죄하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 살가죽을 벗기러 온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이 발단이 됐다. 농민군은 결국 패해 수만명이 일본군에게 도륙을 당했다. 달아난 조병갑은 재판관으로 다시 돌아와 1898년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오욕을 되풀이하지 말자. 박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 꼭 그리되게 해야 한다. 검찰이 최순실씨 등의 공소장에 쓴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은 구속을 피하기 어렵고,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촛불을 든 팔에 힘이 떨어질 때면, 물이 밀려드는 어두운 세월호 선실에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생각하자. “나, 살아 있어.” “엄마, 사랑해”

jeje@hani.co.kr

[디스팩트 시즌3#30_박근혜 퇴진 로드맵 어떻게 짜야하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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