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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철 칼럼] 시민의회를 생각한다

등록 2016-12-01 18:08수정 2018-01-08 11:16

지금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시민들의 절규에는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좋은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들어 있다. 좋은 나라란 별게 아니다. 정치가 민중의 삶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즉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나라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개혁의 주체는 나라의 주권자, 즉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왜 저렇게 앙탈을 부리며 버티고 있을까? 온 나라의 광장과 거리로 백만, 이백만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물러가라’고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도, 어째서 번번이 거짓말과 공허한 변명으로 ‘담화’라는 것을 발표하고는 구중궁궐 속으로 숨어버리기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사실, 진퇴를 분명히 한다는 것도 웬만한 소통 능력이 없이는 안 될 일일 게다. 예를 들어, 18세기 아프리카의 다호메이 왕국에는 특이한 정치적 관습이 있었다. 즉, 신하들이 보기에 국왕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대표자를 왕에게 보내 앵무새의 알을 전해주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앵무새 알은 “이제 국왕께서는 많이 피로하셨으니 주무시는 게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면 그 앵무새 알을 받아든 왕은 지체 없이 뒷방으로 물러나서 그 방에서 기다리는 아내들에게 자신의 목을 조르라고 명령하고, 이윽고 영원의 잠에 든다는 것이다. (물론 앵무새 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왕들도 때때로 있었고, 그럴 때는 온 나라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상태로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면, 국왕이나 국가의 최고 권력자에게 신하들이나 측근이 ‘퇴진’을 직설적으로 요구하거나 조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앵무새 알이라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다호메이 왕국의 관습은 매우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호메이의 앵무새 알 같은 것은 없지만, 더 확실한 메시지 전달 방식이 있다. 즉,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알려주는 여론조사가 상시적으로 공표되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과 거리로 나와 어둠을 밝히는 장엄한 촛불시위가 있다. 앵무새 알이라는 상징적인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직설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는 이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써 다섯 번이나, 그것도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민들의 참가로 전개되었음에도 이 신호를 읽지 못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즉, 퇴진을 ‘강요하는’ 것이다.

실은, 대한민국이 지난 몇 년간 선출된 공적 권력이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지배되어 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었을 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는 망설임 없이 즉각 개시돼야 했다. 그런데도 소위 정치권은 우물쭈물 시간을 허비했고, 이제야 탄핵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야당의 일치된 입장이 발표되었다. 물론 현재의 국회 구성으로 봐서 여당 의원들의 상당수가 찬동을 하지 않으면 탄핵안이 부결된다는 게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좌고우면할 것 없이 곧바로 탄핵안을 상정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이 나라가 정말 민주공화국이고, 앞으로도 민주공화국으로 남아 있으려면,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적당히 봐줘서는 절대로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는 법치의 원칙을 더 준엄하게 적용하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통령이 저지른 죄는 배고픈 장 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정도의 죄가 아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과오는 가공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개념 없는 무책임한 통치로 인해 나라의 위신과 국민들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주권과 자주성, 그리고 남북관계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고, 무엇보다도 힘없고 가난한 절대다수 평민들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절차를 미루고, 우물쭈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야당은 여당 의원들의 태도에 대해서 걱정할 것도,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다. 여당 의원들도 자신들이 탄핵에 찬성하지 않을 때,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무기명 투표라고 하지만 누가 탄핵안에 찬성하고 반대했는지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뜻을 어기면서 국민의 대표 노릇을 계속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비록 일시적으로 ‘의원님’ 행세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도태되고 만다는 것을 절감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위구심도 버리는 게 좋다. 헌재의 재판관들은 멀리 떨어진 섬나라의 주민들이 아니다. 그들 중 다수가 보수파라고 하지만, 지금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오는 다수 시민들도 보수파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운영의 근본 질서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헌재의 재판관들이 기본적으로 민주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의 법률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법리와 민주적 원칙에 어긋난 판단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탄핵 심판 기간 동안 현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이것도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양식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도 거의 모든 인간처럼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현 상황에서 대다수 시민들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가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의 대통령직 수행을 시급히 정지시키고 그가 국가수반의 자격으로 어떠한 엉뚱한 대외적·대내적 중요 결정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우리가 정작 걱정할 것은 탄핵안 처리 이후의 상황이다. 지금 분위기로 볼 때, 한동안 개헌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절차를 밟기 전에 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을 하자(그렇게 해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돕자)는 여당 일각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임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실은 개헌보다 시급한 것은 비례대표제 확대를 위한 선거법 개정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개헌 논의 자체를 차단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지금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시민들의 절규에는 단지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좋은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들어 있다. 좋은 나라란 별게 아니다. 정치가 민중의 삶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즉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나라이다. 그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면 법과 제도를 고치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헌법이든 선거법이든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라의 주권자, 즉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이 나라가 이토록 망가진 것은 국가운영을 맡아온 정치가들이 다수 민중의 이익을 거스르고 소수의 기득권자·특권층의 이익을 챙기는 데 열중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법과 제도의 개선 작업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는 자명하다. 내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전국의 시민운동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총집결하여 제비뽑기로 100~200명 정도의 대표자들을 뽑아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거기서 관계 전문가와 학자들의 조력을 받아 상당 기간에 걸친 숙의와 활발한 토의를 통해서 새로운 헌법안과 선거법을 작성하고, 그것을 국회가 수용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소 낯선 제안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민주적 원칙에 가장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지금 촛불시위에 표현되고 있는 이 나라 민중의 엄청난 민주적 열망을 정당하게 수렴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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