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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오발탄>의 기억 / 허문영

등록 2016-11-25 18:08수정 2016-11-25 20:42

허문영
영화평론가

얼마 전 <오발탄>(유현목, 1961)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영화의 유일한 프린트인 낡은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상영본으로 3억여원을 들여 디지털 복원판을 만들었고, 이 복원판으로 블루레이를 제작중이다. 음성해설에 참여하느라, 명암 대조 장면들과 사운드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 복원판을 보면서 내가 이 영화를 꽤 오래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범선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오발탄>은 최고의 한국영화를 뽑는 설문조사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해왔고, 요즘도 <하녀>(김기영, 1960),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등과 함께 최상위권에 꼽힌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김기영(<하녀>)에 대한 재조명, <휴일>(1968) 프린트의 발견과 함께 이루어진 2000년대 중반의 이만희 재평가 분위기에 밀려 <오발탄>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물론 여기엔 연극적 대사, 산만한 구성, 과도한 상징이라는 이 영화의 부인하기 힘든 결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시 본 <오발탄>은 산만하다기보다 분열적이다. 한편엔 당대의 현실과 풍경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관찰과 묘사가 있다. 다른 한편엔 독일 표현주의의 과장된 조명과 앵글, 에이젠시테인의 몽타주에 영향을 받은 시각적 수사학이 있다. 양자는 완전히 찢겨 있다. 여기에 상업적 계산이 빚어낸 듯한 할리우드 갱스터의 관습까지 가세한다.

예전엔 이 분열을 이 영화의 결함이라고만 생각했다. 다시 본 뒤, 이 결함은 삶과 사유의 편에 서려는 지식인적 자의식과, 그 맞은편에 있는 시각적 욕망 혹은 추상에의 동경이라는 예술가적 지향의, 영화를 거의 파열 직전으로 몰고 가는 내적 교전으로 느껴졌다. <오발탄>이 여전히 한국영화사의 문제작이라면, 온전한 미학적 가치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난한 시대의 영화감독이 피할 수 없었던 내적 교전의 상처가 영화 내부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엔 보지 못했지만 새로 눈에 띈 대목도 있다. 미친 노모와 다섯 가족을 부양하느라 가난에 찌든 중년 사내(김진규)는 전쟁의 흔적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서울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그런데 그는 걸을 뿐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대개 허공이나 땅을 향한다. 흔히 모더니즘 영화의 출발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시카) 영화가 행동의 영화가 아니라 견자(見者)의 영화라고 한다. 상황을 변화시킬 행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물에게 허락된 유일한 지각 양식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발탄>의 주인공에겐 행동은 물론이고 보는 행위조차 버거운 것이었다.

한국영화사에는 보지 않는 주인공이 꽤 있다. <휴일>의 백수 청년 허욱(신성일)도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했으며, <칠수와 만수>(박광수, 1988)의 가난한 간판장이 만수(안성기)도 말할 때도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았다. <박하사탕>(이창동, 2000)의 영호(설경구)는 현재를 볼 수 없어 과거로 돌아가 눈을 감는다. 걷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걷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대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 세상은 믿을 수 없이 바뀌었지만, 자신을 여전히 ‘오발탄’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들이,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그저 걷고만 있지는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오발탄>을 다시 보니 마음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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