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낱말로 ‘post-truth’(탈진실)를 꼽았다는 뉴스를 읽었다. 아마 그 낱말이 올해를 대표하는 말로 선정된 데에는 그 말이 유달리 자주 쓰이고 또 낯을 비친 이유만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사전 측에서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 또는 조짐”을 이 낱말에서 찾는다. 낱말이 시대의 표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제법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올해의 낱말이 올해의 시간을 집약할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가당착에 가까운 생각을 감춘다. 탈진실이라는 낱말은 언어를 불신하는 세계를 비춘다. 그렇지만 사전 측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언어는 시대의 징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은 어떻게든 언어를 통해 고지되어야 한다. 언어를 통해 알려지지 않는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든 담론이라고 부르든, 한때 유행했던 개념들은 언어가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눈을 부릅뜨고 이해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이제 언어는 현실보다는 말을 뱉고 그 말에 상처받거나 열광하는 이들의 세계 속에서 헤엄친다. 언어는 현실을 나타내지 못한 채 말하는 이와 그를 듣는 이 사이에 감정을 지필 뿐이다. 그 탓에 시대가 자신을 언어로 나타내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이 사전은 올해의 낱말로 ‘emoji’(이모지)를 꼽은 전력이 있다. ‘이모지’란 채팅을 할 때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감정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를 가리킨다. 이모티콘을 보냄으로써 이제 우리는 말을 대신한다. 아마 채팅창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ㅋㅋ이거나 ㅎㅎ인 것은 크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분위기나 기분을 전함으로써 ‘지금-여기’를 말하는 것을 대신하게 된 것은, 말에 무능한 탓이라기보다는 말의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과 정서, 분위기 같은 말들이 부쩍 사회를 읽는 개념으로 떠오르게 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바는 크게 없다. 그것은 그저 현실을 상실한 이들이 겪는 마음의 모습을 묘사하고 기술할 뿐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를 대표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런 끔찍한 학살 이후에 태평하게 시나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로 흔히 새겨지곤 하였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의중에는 언어를 둘러싼 해결 불가능한 모순에 대한 생각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에 관해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서정시로 대표되는 언어를 끌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는 언어가 더 이상 현실을 밝히는 불빛이 되지 못하고 지배자의 힘을 전달하는 전기자극처럼 되어버렸던 세계를 이미 지켜보았던 터이다. ‘탈진실’이라는 낱말은 언어가 마비된 세계의 언어의 잔해들 사이에서 집어든 말일 것이다. 세계를 드러내지 못하는 말들은 이제 가속화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신조어와 유행어는 현실을 겪으나 그를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토해내는 반응들을 언뜻 비춘다. 그러나 언어를 불신하고 침묵으로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세계를 나타내는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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