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정
ESC팀장
지난해 12월15일 점심 무렵. 부슬부슬 비 내리는 필리핀 코론 바닷가의 한 식당에 앉았다. 주문한 ‘해물볶음면’은 튀긴 면으로 만든 누룽지탕 같았다. 맛은, 그냥 좀 짰다. 산 미구엘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빗속을 오가는 여행객들을 지켜봤다. 아, 육지여행자들은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는데 나는 어찌하여 바다에 못 들어가는가.
그날은 태풍 때문에 다이빙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국제선 4시간여, 마닐라에서 팔라완까지 국내선 1시간여를 타고, 다시 택시로 30분을 넘게 달려간 곳이었다. 일주일 내내 ‘다이빙-산 미구엘-잠’만 즐기다 오리라 다짐하고 어렵게 간 곳이었다. 그런데 아직 그걸 하루밖에 못 했는데 태풍이라니. 그래도 어쩌나, 기다려야지.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다이버. 조혜정 기자
성격 급하고, 뭐든 계획된 대로 딱딱 진행돼야 안심하는 내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이 되는 때가 다이빙을 할 때다. 바다 상황이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이빙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덴 제법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하늘은 말간데 파도가 춤을 출 땐 속이 타들어갔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조류가 셀 땐 욕이 나왔다. 시야가 나빠 답답할 때도 있고, 물속 풍경이 기대 이하일 때도 있었다. 가이드나 버디(다이빙 짝)의 다이빙 스타일이 나와는 달라 불편한 적도 있었다. 흔히 보는 ‘좋은 풍경 사진’이 적게는 수십 차례, 많게는 수천 차례 셔터를 눌러 고르고 고른 결과이듯, 다이빙도 언제나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건 기다림 뒤에 오는 기적 같은 시간 때문이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나 또한 말할 필요가 없는, 소음이 사라진 고요의 시간. 공기와는 다른 물의 밀도가 내 몸을 감쌀 때 느껴지는 편안함. 수면 아래로 내리쬐는 햇살의 반짝임. 왜곡된 공간감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움. 출수했는데 비가 조금 내리고 있을 때의 짜릿함. 이 놓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매혹을 나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기다릴 것이다. 바닷속 여행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할 시간을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