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모두 부끄러움을 인간의 주요한 본성으로 본다. 맹자는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아는 게 의로움의 출발이라고 보았다(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 <성서>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눈이 밝아지자 벗은 것을 알고 나뭇잎을 엮어 아랫도리를 가린다.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느낀 인류 최초의 감정 또한 부끄러움이었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부끄러움과 참회 여부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 동물이나 아이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은 성숙한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이다. 참회는 양심과 용기의 소산이며, 많은 경우 수모의 경험은 원한과 보복으로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4일 대국민담화에서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해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말했다. ‘자괴감’은 인기검색어가 되고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자괴감이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나 참회가 아니라 곤경에 처한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국민의 자괴감과는 사뭇 딴판이다. 민주국가 시민으로 모멸감을 경험한 국민은 도리어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라고 묻고 있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의 저자 다니엘 튜더는 최근 칼럼에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수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있는 이유를 짚었다. 그는 한국민이 이번처럼 국가적 수치심을 경험한 적이 없다며,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 부패를 참을 수 있지만 수치심은 용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비자>는 ‘용은 사람이 길들여 능히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고 역린의 고사를 전한다. 민주국가 시민으로서의 자괴감, 그것이 국민의 역린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