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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박 대통령과 구국수사단 / 김남일

등록 2016-11-15 17:54수정 2016-11-15 20:11

김남일
정치팀 기자

신통한 예지력에 나 자신이 무서운 요즘이다.

“박근혜 대통령만 승리하고 국민은 패배하는 괴이한 빠던은 전 국민 벤치클리어링을 부를 수 있다”(10월19일)는 묵시적 경고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 한복판에 100만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것으로 현실이 됐다. “수령 치하에서 ‘새누리 혁명론’에 입각해 운동권적 사고를 하고 그 언어를 쓰는 의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당이 내부모순을 정리하지 못하면 결국 혁명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9월21일)고 쓰자, 정치인들이 밥을 굶고 여당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단순한 어휘, 그런데도 입만 열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능력, 자기 당 사람들도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억지. 대통령에 대한 정신감정은 쉽지 않다. 그러니 대선 후보로 나설 때 정신감정 서류라도 받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8월24일)고 하자, 대통령의 무녀도식 정신세계가 알아서 활짝 열렸다. “박 대통령은 ‘다시 말해 끝이 만일 나쁘다면 그 전에 좋았던 것이 다 소용없다는 얘기도 된다’고 썼다. 박근혜 정부 3.5년을 돌아보면 그런 한가한 걱정을 할 때는 아닌 듯하다”(7월27일)고 했더니, 이런 막장도 없다. 일찌감치 “‘사실상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게 됐다”(6월29일)고 쓰다니, 나는 ‘샤먼킹’인가.

구국의 취재 능력을 못 믿겠다면 이건 어떤가. 2012년 한 현직 검사에게 일본 만화 <우국의 라스푸틴>을 선물했다. 그는 4년여가 지나 ‘토속 괴승’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는 청와대의 민정수석이 됐다. 놀라서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딱 9년 전인 2007년 11월15일. 대검찰청은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특별수사·감찰본부 설치’라는 제목의 A4용지 한 장짜리 자료를 낸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삼성 비자금 특검이 가시화하자 검찰이 선수를 친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검찰총장 후보자 등 일부 검찰 간부들이 삼성그룹의 관리 대상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국민들의 의혹이 증폭됨으로써, 기존의 수사지휘 체계에 따른 검찰 수사로는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당시 특별수사·감찰본부장은 현 헌법재판소장, 부본장은 현 검찰총장이었다. 삼성증권 전산센터를 사흘간 압수수색하며 요란하게 출발한 검찰 수사는, 그러나 삼성 비자금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곧바로 수사팀 축소로 이어진다. 당시 특검 후보 추천권을 가진 대한변협이 추천한 인물은 정통 공안검사였던 조준웅·고영주 변호사, 역시 검찰 출신의 정홍원 변호사였다. 특검으로 낙점된 조 변호사는 수사 기간 100일 내내 사람만 부르다 끝났다. 고 변호사는 이후 “○○○은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정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좀비 총리’라는 별칭을 얻는다.

‘박근혜-최순실 특검법’이 17일 국회를 통과한다. 이번에도 검찰은 뒤늦게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박 대통령 대면조사까지 벼르고 있지만, 어째 9년 전 기시감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신통방통한 예지력보다는 과거 100일간의 용맹정진을 통해 얻은 경험이 우선할 때가 있다. ‘세월호 7시간 의혹’도 조사할 수 있다는 특검법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의지를 가진 사람, 누가 특검이 되느냐다.

몹쓸 악당들만 끌어모아 지구를 구하게 한다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수사 하나는 끝내줬다는 비리 법조인들을 끌어다 속죄의 구국수사단을 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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