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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반세기의 주술

등록 2016-11-09 18:25수정 2016-11-09 20:07

일각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주술에 홀린 권력자와 탐욕스런 측근의 일탈로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주술에 홀린 권력을 비웃으면서 정작 우리 자신을 지배해온 반세기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경유착과 권력야합을 키우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박근혜와 최순실과 우병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지지했던 사람도 돌아섰다. 박근혜 정권의 범죄행각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수십만 시민이 광장에 나와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수많은 공범과 방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비호해온 권력집단을 우리는 이제 또렷이 알게 되었다. 새누리당, 재벌, 고위관료, 극우언론, 검찰 등이다. 불법에 대한 처벌은 사태 해결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재발을 막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발적·일시적인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적·구조적인 범죄였고 지극히 한국적인 권력 현상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자들이 국가 전체를 망가뜨릴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가?’ ‘국가가 망가지고 있는 동안, 사회적 감시체계는 왜 작동하지 못했는가?’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들일 테다.

박근혜를 최순실의 꼭두각시 내지 보수세력의 허수아비로 보는 시각은 분명 사태의 일면을 포착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금치산자” “심신미약자” 같은 단어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순 없다. 그건 비판이 아니라 장애인에 빗댄 조롱일 뿐이며 나아가 박근혜의 책임을 경감하는 효과를 낸다. 박근혜는 선연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오랜 세월 현실정치의 장에서 지지기반을 쌓아온 직업 정치인이었다. 또한 그는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또 바라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 박근혜에게서 박정희를 보았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박정희가 되어달라는 주문이 아니었다. 그게 불가능함을 모를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다. 박근혜는 단 한순간도 박정희의 대체자였던 적이 없다. 박근혜는 언제나 박정희의 ‘환기자’(evoker)였다. 오히려 대체가 아닌 환기였기에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같은 안전한 향락으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이 향락은 곧, 마초성과 폭력성 같은 요소들이 선택적으로 제거된 박정희주의다.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둔 시기, 나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슬로건을 보고 떠오른 국가가 싱가포르라고 쓴 적이 있다. “강력한 치안, 일벌백계의 가혹한 엄벌주의, 높은 국민소득, 분배보다 성장…. 지금 당장 여론조사를 하면 이런 것들 대신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 같은 건 조금 희생해도 된다고 답할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터이다. 우리 안의 ‘싱가포르 판타지’, 그게 바로 박근혜의 힘이다.”(‘싱가포르 판타지’, <한겨레> 2012년 12월3일) 싱가포르 판타지는 지난 50여년간 한국인의 내면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은 주술이었다. 가치관을 조사한 여러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은 한국인이 엇비슷한 경제 수준의 나라들과 비교해도 두세 배 이상 돈에 연연하고, 사회적 가치나 윤리보다 가시적 성과와 개인의 능력에 집착하며, 민주주의나 인권, 진보적 가치에는 매우 적대적이란 점이다. 어느 조사에서 다른 선진국 시민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대부분 ‘나 자신’이나 ‘달라이 라마’ 등을 꼽았을 때, 한국인들은 압도적 비율로 당시 세계 2위 부자였던 ‘빌 게이츠’를 지목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판타지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만들어내는 온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유죄’라는 논리로 흘러버리면 곤란하다. 반대로 ‘모두가 유죄인 곳에선 누구도 유죄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던 한나 아렌트를 따라, ‘죄’와 ‘책임’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나치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시민에게 죄를 물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집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박근혜의 공범이 아니지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집단적 책임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해 사회의 모순을 시정할 의무를 가진다.

일각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주술에 홀린 권력자와 탐욕스런 측근의 일탈로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주술에 홀린 권력을 비웃으면서 정작 우리 자신을 지배해온 반세기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경유착과 권력야합을 키우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박근혜와 최순실과 우병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변화가 되지 못하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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