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청와대는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 등 외치만 맡겠다고 흘리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다.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할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대응 등 내치보다 외치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 한창 폭로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참상을 지켜보면서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설명해야 할 것인지 막막하던 차에 한 지인이 동치미처럼 속 시원한 풀이를 해줬다. 그간,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법·절차를 지키는 흉내를 내면서 내용상으로는 강권 정치를 펼쳐왔다는 것에 주목해 ‘연성 독재’ ‘유사 독재’ 또는 ‘세미파시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지난해 말 <창작과비평>에서는 더 학문적으로 정제된 ‘신종 쿠데타’라는 개념을 내놓기도 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2015년 12월 발행된 이 잡지 겨울호 머리말에서 “1987년 이후 구축된 민주적 거버넌스를 무너뜨리고 수구 헤게모니를 영속화할 수 있는 정치적 기초를 만드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바, 곧 ‘신종 쿠데타’(creeping coup d’etat) 전략”이라고 박 정권의 속성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작금의 사태를 설명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사술에 사로잡혀 공사 구별을 하지 못한 채 ‘무당 정치’로 나라를 농단해왔다는 설명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다고 무당 정치라는 개념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해명할 수 있는 만능열쇠냐면 그렇지도 않다. 대통령이 무당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에 집착한 흔적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재벌 회장들을 불러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청와대 수석에게 수금을 독려하며, 자신의 눈 밖에 난 재벌 부회장의 경질을 강요한 것을 과연 무당의 조종에 따른 허수아비 짓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사정기관에 수십년 근무한 경력의 지인이 불쑥 나타나 “재벌을 협박해서 돈을 내놓으라 하고, 부하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 뒤 잘 듣지 않으면 자르고, 게다가 밤의 남자까지 등장하고, 이게 조폭들 행태하고 뭐가 다른가. 정말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열 받는다. 내가 보기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조폭 정권’이다”라고 숨도 쉬지 않고 열변을 토해냈다. 지인의 말마따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곁가지를 다 떼어놓고 줄기만 보자면, 대통령이란 자리를 이용해 국가 기관을 수족 삼아 물불 가리지 않고 돈과 이권을 긁어모으려고 한 ‘신종 국가형 조폭 비즈니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야말로 박근혜를 두목, 최순실을 부두목으로 하고,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 부처,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을 그때그때 행동대 또는 수금 대원으로 부리며 사익을 추구해온, 세계사에 유례없는 ‘역대 최강의 창조 비즈니스 모델’로 기록될 만하지 않은가. 대다수의 시민도 개념화만 하지 못했을 뿐이지 말도 되지 않는 대통령의 이런 조폭 행태에 분노해, 100점 만점에 5점이라는 역대 최저의 낙제점을 주고,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하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고, 야당 교란용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카드를 내민 채 국정 중단 운운하며 임기를 이어가려는 꼼수를 피우고 있다. 식물 대통령의 퇴진은 오히려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청와대는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 등 외치만 맡겠다고 흘리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할 수도 없고 내치가 받쳐주지 않는 외치는 무력할뿐더러,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할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대응 등 내치보다 외치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내치에 실패하면 국민이 일시적인 고통을 받는 데 그치지만, 외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단순명쾌한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외치는 내치에 실패한 대통령이 맡기엔 너무나 중대하다. 박 대통령은 내치의 실패를 자인한 이상 외치도 할 수 없고, 따라서 내·외치를 모두 할 수 없게 된 만큼 물러나는 것이 순리다.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자퇴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정 버틴다면 강제 퇴출 그 이상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서방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안팎 신뢰 제로의 ‘조폭 정권’이 이런 ‘세계 동란’에 잘 대응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을 맡길 수도 없다.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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