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1월3일 녹색평론사 회의실에서는 ‘한일 식견(識見) 교류’라는 행사가 있었다. ‘오다 마코토를 읽는다’라는 이름의 일본 쪽 시민모임과 <녹색평론>을 매개로 활동하는 지식인·시민들이 함께 모였다. 일본 쪽 참석자는 “강자의 정치로부터 약자의 정치로”라는,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의 정책제안에 동의해 1989년 ‘시민의 의견 30’이라는 단체를 결성할 때부터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오다 마코토는 1960년대부터 일본의 반전·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지식인이다. 앞에서 거론한 모임의 인사들은 오다의 사상적·운동적 의미를 그의 사후에도 음미하고자 하는 시민들이다. 가령 ‘오다 마코토를 읽는다’의 사무국장인 기타가와 세이이치로는 60년대부터 미나마타병 진상규명 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산리즈카 농민투쟁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인사다. 이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교수나 엔지니어 같은 지식인·전문가도 있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를 깊이 우려하는 평범한 시민도 많았다. 한일식견교류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2015년 위에서 언급한 시민단체의 초청강연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현대세계를 파악하며, 이에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에 호응해 만들어진 한일 시민들의 모임이다. 한국에서의 첫 회합에서는 야마구치 유키오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가 ‘근대화라는 고질병에 대하여’라는 발표를 중심으로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그는 이 발제에서, 근대화·공업화가 야기한 문제들과 민중 저항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조명했다. 조선에서의 동학농민전쟁이나 같은 시기 일본에서 벌어진 아시오 광독 사건은 물론,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원전 반대 운동까지 민중 저항을 통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의 탈원전 운동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의 경우, 청년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강력한 저항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을 중지시켰고, 민진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결국 원전의 완전폐기 정책까지 이끌어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대만의 시민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일본에서도 또 한국에서도 탈원전 운동과 정치적 변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에 대해 야마구치 대표는 대만은 놀랍다. 한국의 강력한 항쟁 전통은 대단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자민당 장기집권을 극복할 힘이 사실상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이나 대만처럼, 일본에서도 안보법제 반대를 기치로 실즈와 같은 대학생 단체가 1년여 투쟁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해산을 선언했고, 이후 전개된 각종 선거에서도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55년 체제의 지속이랄까. 그러나 나는 일본에서도 청년·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뜻하지 않게 폭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운동에도 ‘거울효과’라는 것이 있다. 3·11 이후의 시위하는 일본 청년들과 4·16 이후 한국 청년들의 각성과 투쟁은 대만에서의 탈원전 운동과 알게 모르게 결속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승리와 패배 모두를 글로벌하게 참조하고 거울처럼 반사한다. 투쟁의 기억을 반사하는 ‘거울’은 이미 있으니, 이제부터는 분산된 정치적 힘을 국경을 넘어 결속시키고 집중시키는 ‘돋보기’에 대해 상상해보는 건 어떤가. ‘돋보기’는 어디에 있나. 지금 이곳에 있다. 등잔 밑으로 거울을 비추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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