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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어느 상습흡연자의 울분 / 서동진

등록 2016-10-28 19:14수정 2016-10-28 21:05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나의 흡연자 인생을 본격 궤도에 올려놓는 데 톡톡히 한몫한 주범을 꼽자면 시인 김수영이다. 흰색 ‘난닝구’를 입고 침울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낯은, 시쳇말로 끝내줬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냐”고 자책하는 시인은 산문에서 생계난을 해결하기 위해 거푸 커피와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한다. 그럴수록 나는 시인의 아름다운 영혼에 불을 지핀 원흉이 담배와 커피일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흡연에서 비롯한 모든 피해를 보상받으려 마땅히 김수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소하겠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에게 알량한 세상의 위선을 새삼 깨닫게 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흡연이 오늘날 가장 몹쓸 도덕적 병폐로 지목된 이유에 대한 분석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깐깐한 철학자치고 금연을 둘러싼 도덕적 캠페인에 대해 한두 마디 안 한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요점은 대개 이렇다. 오늘날 자신을 돌보고 책임져야 할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 악당 가운데 흡연자는 으뜸가는 순위에 든다. 자기계발이라는 윤리적 목표는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뭐라 입술이라도 달싹일 요량이면 선제공격을 하듯이 제 탓은 안 하고 세상만 탓하는 미욱한 인간들이라 포문을 연다. 이를테면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자본주의를 들먹이거나 가부장제를 들먹이면, 세상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기 탓은 않고 애먼 세상을 탓하는 자라고 후려친다. 그러다 어느새 댁이 가난하고 불행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잘못된 선택을 한 탓이라는, 설득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에 우리는 인질이 되어버렸다. 결국 불행은 선택의 잘못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마땅히 수긍해야 하는 진실이 되었다.

스스로에게도 좋을 것이 없고 타인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백해무익한 나쁜 선택. 자신을 돌보는 책임을 포기하고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악덕 중의 악덕. 그런 나쁜 선택과 패덕의 본보기는 단연코 흡연이다. 그러나 하루에 담배 한 갑쯤은 너끈히 피워대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는 손실과 피해를 귀신같이 셈하는 세상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일 뿐이다.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따지자면 저임금, 과로, 스트레스를 따라잡을 것이 없다. 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당신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입니다’라고 목청을 돋우는 공익광고를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당신을 해치는 불행은 담배, 과음, 졸음운전, 게으름, 주체하지 못하는 화, 부주의한 식습관 따위에 있다는 설레발을 수도 없이 듣는다.

흡연만을 따지고 들자면 식당 내 금연이 압권이다. 미국에서는 식당 내 흡연을 금지한 이유가 식당 종업원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쓴웃음만 짓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자애로운 당신은 왜 외식업 노동자의 다른 권리, 최저임금을 보장하거나 고용계약을 체결할 권리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들이 담배연기에 노출되어 죽을 확률보다 저임금과 과로로 죽을 확률은 굳이 계산해보지 않아도 월등히 높다. 태업이나 시위보다 칠칠치 못한 자신의 “마음 챙김”에 애쓰는 것이 낫다는 세상의 협박은 물론 다른 세상 따위는 없다는 허무주의의 극치이다. 그러니 화가 나 담배라도 뻑뻑 피워댈밖에. 술이라도 퍼마실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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