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를 읽었다. 이 소설은 세월호 대참사 직후 자발적으로 구조활동에 참가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씨를 모델로 삼은 소설이다. 비극적이게도 이 소설이 완성되기 직전, 김관홍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소설이 종결되지 않았는데 모델이 유명을 달리했으니, 비극이 촉발한, 비극 가운데 탈고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 비극의 차원을 넘어 그것을 촉발한 상황 전체를 문제삼을 때, 작가는 불가피하게, 아니 필연적으로 증언자의 몫을 대행하게 된다. 김탁환의 소설에 등장하는 숱한 발언들은 작가가 취사선택하고 재구한 것이기는 하나,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의 육성과 기억에서 출발한 것이다. 소설의 끝머리에 붙어 있는 감사의 말을 보면, 이 소설은 작가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에서 듣게 된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작가의 취재로부터 생성된 작품이다. 이럴 때 작가가 감당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가령 일본의 작가인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 3부작은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에 걸린 주민들의 증언과 진실규명에 바쳐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나마타병이 논란이 되기 시작한 1960년에 쓰기 시작해 2004년에 최종적으로 종결되었다. 무려 40여년에 걸쳐 쓴 셈인데, 일본의 소설가 이케자와 나쓰키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문학’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사실과 허구, 역사적 기록과 증언, 시와 산문적 진술이 뒤섞여 있어 특정 장르로 환원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처음 집필할 때 작가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경청자·기록자의 역할을 하다가, 이후에는 적극적인 동조자·증언자·활동가로 스스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상승시켜 나간다. 그 과정에서 수은중독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업, 국가, 문명의 논리를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비판하는 역할을 글쓰기를 통해 감당하게 된다. 글쓰기의 시작은 비극에 대한 우연한 접촉과 공감 때문이었지만, 그것이 진행될수록 더 자각적이고 명료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 글쓰기의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김탁환과 이시무레 미치코의 작품을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 관찰과 증언과 쓴다는 행위의 지속성과 치열성의 밀도랄지 하는 것이 ‘증언’의 서사화나 문학적 ‘구축’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작가는 샤먼 비슷하게 희생자에게 자기를 빌려주기도 해야겠지만, 시선을 더 넓게 확대하여 사건의 총체적 맥락에 다가가기 위한 객관화를 동시에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그러자면 참사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는 ‘어둠의 핵심’에 대한 탐구가 동반될 수밖에 없고, 그랬을 때 세월호 대참사가 진행되는 국면에서 달리 반응했던 각각의 행위자와 시스템의 문제점이 더 크고 넓고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게다가 감동도 동반되어야 한다. 세월호 대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은 일종의 미제사건으로 덮어지는 것 같다. 일본에서의 미나마타병의 진실 역시 주민들의 집단발병 이후 기업과 정부, 의료계의 조직적 은폐 탓에 원인불명의 미스터리로 상당 기간 지속되었던 전력이 있다. 이런 사정 탓에 이시무레 미치코의 글쓰기 역시 한없이 길어졌던 것이며, 소설을 넘어선 혼합장르로서의 글쓰기를 전개하게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거짓말이다> 이후 김탁환의 소설 쓰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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