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한국 안의 트럼프 현상이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럼프의 어법을 빌려 표현하자면 “미국의 트럼프는 아직 말뿐이지만, 한국의 트럼프 현상은 지금 현실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한국의 트럼프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명백하고 현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텔레비전 토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의 존 에프 케네디 후보의 대결 때였다. 당시 열세에 있던 케네디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이미지가 크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텔레비전 매체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앞서가던 닉슨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새로운 미디어인 텔레비전이 선거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 정치커뮤니케이션 교과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다. 미국에선 사상 첫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이자 여러모로 선거사의 새 장을 연 이 토론을 영어 대문자를 써, 대토론(Great Debate)이라고 부른다. 이 토론이 미 대선 토론의 원형을 제시했고, 케네디와 닉슨이라는 두 토론자의 품격과 지적 수준도 최상급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호들갑스럽긴 해도 ‘그레이트’라는 수식을 받을 만하다. 반면 지난 10월9일(현지시각) 열린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간의 제2차 텔레비전 토론은 미 대선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토론(Dirty Debate)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아직 19일(현지시각)의 마지막 3차 토론이 남아 있긴 하지만. 물론 2차 토론을 저질 막장 쇼로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트럼프에게 있다. 힐러리가 얘기할 때 손짓과 잡음을 넣으며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는 위압적인 태도도 토론자로서 자격 미달이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토론 과정에서 쏟아낸 반민주적이고 교활한 말과 생각이다. 나는 트럼프가 2차 토론에서 보인 언행의 거의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무법적인 언사, 논점을 다른 쪽으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려는 적반하장의 뻔뻔함 두 가지가 토론을 최악으로 전락시킨 주범이라고 판단한다.
2차 후보 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답변을 하고 있는 도중 뒤쪽에서 트럼프가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라를 들썩이고 있는 ‘측근 실세' 최순실씨 비리가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도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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