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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수은 장난감과 핵커피 / 피터 김용진

등록 2016-10-14 15:55수정 2016-10-14 22:02

피터 김용진
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대학시절 미생물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날 진도가 빠르다며 유학시절 겪은 몇가지 사건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중 하나가 독일에서 친구 병문안으로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병실에서 수은온도계가 깨진 거다. 수은이 바닥에 굴러다니길래 빗자루를 구해 유리며 수은을 쓸어담으려 간호사를 불렀더니 그때부터 갑자기 그 층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고 한다. 근처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마스크며 두꺼워 보이는 보호장구를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수은을 처리해 갔다고. 선생님의 표현으로 그 당시 이게 웬 호들갑인가 했다고 하셨다. 당신에게 수은은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고 하던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전 호들갑’은 그 이후로도 계속 경험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친근’했던 수은이 어떤 중금속인지 나중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수은’ 하면 느껴지는 그 친근함과 어린 시절 장난감이라는 이미지는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다고 하셨다.

동네 걷고 싶은 거리에는 ‘핵커피’라는 체인 카페가 있다. 노란색으로 카페 전체를 칠하고 방사능 위험 표시가 되어 있는 드럼통으로 바깥을 장식했다. 홈페이지에는 “터져라 핵폭탄! 핵폭탄을 터뜨리는 듯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빅사이즈 커피”라는 광고문구가 달려 있다. 아마도 ‘핵’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엄청난’ 것이라는 수식어 정도로 인기가 있나 보다. ‘핵커피’ 카페의 컵홀더에는 크게 영문으로 뉴클리어 커피(Nuclear coffee)라고 쓰여 있다. ‘엄청난 커피를 보여주겠어요. 크기도 핵사이즈. 방사선이 여러분을 초능력자로 만들어줄지도 몰라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일터로 가는 또다른 걷고 싶은 거리에는 ‘핵스테이크(Nuclear steak)’라는 레스토랑도 생겼다. 아마도 고깃덩어리가 엄청 크겠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는 거냐. 유머로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냐. 언어라는 것이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전사고시 주민대피시간 최소 3시간50분.(에너지타임즈 10월8일) 사고가 나면 바로 알려주고 바로 대피시켜 줄 것인가.

-일본 지진전문가 가사하라 교수 “3~4개월 내 또 지진 가능성”.(조선일보 9월28일) 진도 5.8 이상의 지진이 또 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 학교 운동장? 사실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한겨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더 대책이 없다. 게다가 경주 지역은 세계 최대의 원전밀집지역이 될 예정이다.

-신고리 원전 중대사고시 7일 안에 1만6천명 피폭사망.(연합뉴스 9월20일) 방사선에 노출되면 일주일 안에 죽는 사람의 숫자가 이렇다.

각종 시뮬레이션 결과들이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쯤 있어도 되는 사고가 아니라 절대로 일상으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핵주먹, 핵노잼에서 시작된 핵 시리즈가 방사능 누출도 없이 핵커피, 핵스테이크로 우리 입안으로 들어온다. 일부러 쓰지 않아야 하는 단어도 있다. 절대 친근해져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 많던 산성비는 이제 오지 않는 걸까.

사라지지 않았는데 잊히는 것들이 많다. 해결되지 않았는데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_7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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