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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부동산 시장의 햄릿들 / 정세라

등록 2016-09-04 17:18수정 2016-09-05 00:20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장

“그래서 집을 사야 하는 겁니까, 말아야 하는 겁니까?”

올 한해 금융·통화당국이나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련 부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농반진반’ 물어보는 질문이다. 이들은 각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50대 이상 연령대로 우리 부동산 등락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이들이기도 하다.

통화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유학시절을 같이 보낸 일본 동료들의 예를 꺼내들었다. 이들은 개인차가 있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터지고 급락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경제적 운명’을 망친 세대가 됐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이 부동산 거품의 정점기였던 탓이다. 1990년 전후, 거품 붕괴의 서막이 오르기 직전에 부동산 업자들은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으니 집을 사기 가장 좋은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 동료들은 안정적 직장을 토대로 대출을 해 집을 산 뒤 착실하게 빚을 갚았으나, 가격이 3분의 1토막이 난 집을 껴안고 노후를 맞이할 처지가 됐다. 한 세대가 평생의 저축을 무위로 만드는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셈이다. 현재의 일본 사회가 집값 회복에 대한 믿음을 좀체 되살리지 못하는 배경이다. 결국 이 인사는 자신은 부채도사가 아니라는 취지의 ‘우문현답’으로 즉답을 피해갔다. “인구구조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집값이 추세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뛰어넘긴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특정 지역, 특정 집값의 운명은 개별적으로 다를 테니 집을 사라 말라 하긴 어렵지요. 예컨대 중국 대도시 집값에 견주면 서울 강남의 집값은 아직 멀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축적한 경험엔 ‘부동산 불패’ 신화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다. 우리는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화’해서 보유한 사회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의 가구당 순자산에서 토지·건물 위주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75.6%나 됐다. 미국(34.9%), 일본(44.3%), 영국(57.4%) 등에 견줘 부동산에 묶인 자산 비중이 크게 높다는 얘기다. 당연히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저마다 품은 부동산 가격 전망과 기대에도 상당한 간극이 있다. 부모세대는 2012~2013년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던 시점에 잠시 목소리를 낮췄겠지만, 지금쯤은 ‘집값 폭락설’을 들먹이던 자식세대의 등짝을 때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니?” 하면서 말이다.

세대별로 역사적 경험치와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집값 밀당을 하는 와중에 부동산 시장은 고공비행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어른거린다. 개별 집값의 미래야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지만,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빚’에 빚지고 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초유의 저금리 상황에서 빚과 전세를 지렛대로 집을 사고, 억대 전세대출로 집세를 대체하면서 가계부채 위험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청약통장 1순위 가입자가 자격 완화 1년 반 만에 475만명가량 늘어나 1천만명을 돌파했지만, 정부는 당분간 인위적으로 늘려놓은 가수요를 누를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재의 집값은 빚에 기반해 있고 실수요자가 억대 대출을 내지 않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정주할 보금자리를 찾아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야 할 세대의 고민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투 비 오어 낫 투 비….’ 한 세대의 경제적 운명을 부동산 시장에 걸어야 할 실수요자들의 고민이 햄릿보다 가벼울 리 없다. 물론 농식품 분야에 공헌한 덕을 좀 보았다는 누구처럼 ‘할인분양·초저금리 특혜 세트’라도 있으면 결단이 쉬워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seraj@hani.co.kr

[디스팩트 시즌3#18_8.25대책, 가계부채 줄이랬더니 부동산 경기 부채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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