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팀장 “너 나이 먹고 잘리면 마트 가서 캐셔밖에 못해. 너희는 나이 먹으면 쓸모없는 사람들이야.” “야, 넌 뭘 그렇게 처먹냐… 그렇게 쉬고 싶으면 집에 가라.” 이 지독한 말들이 뱉어진 노동현장은 서로 다른 곳이다. 하지만 모욕을 당한 사람들은 같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다. 전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백화점 여성 판매직 실태를 조사해 펴낸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에 나오는 남성 정규직 관리자의 말이다. 후자는 성희롱과 저임금에 항의해 지난달부터 삭발, 파업,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포공항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들은 말이다. 양쪽의 노동환경은 너무 닮아 헷갈릴 정도다. 하루에 11시간 동안 3만보 정도를 걸어다니고(청소노동자), 아침 매장 청소부터 시작해 12시간 가까이 서서 일한다(백화점 노동자). 쉬는 곳은 청소도구가 쌓여 있는 화장실 끝 칸(청소노동자)이거나, 비상계단(백화점 노동자)이다. 30년을 일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원(청소노동자)이고, 인센티브까지 합쳐 140만~160만원(백화점 노동자)을 받는다. 회식 자리에서 남성 관리자가 가슴을 주무르고(청소노동자), ‘오빠’라고 집적대며 손을 슥 쓸어보는 남자 손님이 있어도(백화점 노동자) 항의하지 못한다. 그들의 분노도 똑같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이들의 현실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모순이 응축돼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 특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폐해다. 간접고용은 용역, 외주, 아웃소싱, 파견, 하청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구조는 같다. 원청업체가 자신들이 필요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하도급업체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이다. 김포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청소, 주차관리, 보안검색, 안내 등 16개 업무를 외주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80% 이상은 입점업체·협력업체 사원이다. 이들은 백화점 쪽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제품과 함께 쫓겨난다. 둘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깊은 골이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에게 성희롱과 막말을 한 관리자는 한국공항공사 정규직에서 퇴직 뒤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자기는 직영이다 하면서 파견사원 우습게 보고 함부로 말하고 반말하고. 철저하게 갑을관계다.”(백화점 노동자) 셋째는 성차별이다. 여성 노동자는 나이가 적건 많건 성희롱과 인격 무시 발언에 시달린다. 여성에게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일자리만 주어지고, 여성이 일하니 저임금만 주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3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후 오전·오후 30분씩 휴식시간을 확보했다. 그전에는 커피 한잔만 마셔도 시말서를 써야 했다. 연차도 쓸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연차를 쓰려면 자기 돈 8만원을 주고 동료에게 ‘대직’을 시켜야 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일 오전 한국공항공사 건너편 인도에서는 손경희 청소노조 지회장이 공항공사와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며 3일째 단식농성 중이었다. 손 지회장은 노조 결성에 나선 이유를 묻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내 돈 내고 대직 쓰는 것도 한달에 한번으로 제한하겠다고 했어요. 청소일 하면서 무슨 여행 다닐 일이 있냐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는 “‘내가 반박할 수 있다’는 걸 노조가 생기면서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는 ‘존중받기 위해서’다. 화를 내고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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