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해 청와대가 “국기(國基)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특별감찰관과 언론의 대화 내용이 과연 위법인지부터 의문이지만, 설령 위법이더라도 그것이 ‘나라를 이루거나 유지해 나가는 기초’인 ‘국기’(國基) 문제라는 데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왜 그렇게 과한 말을 쓸까?
‘국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독 자주 쓰는 말이다. 2013년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초본 실종을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공개 비난했고, 2014년엔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 문란”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번 ‘국기’ 언급도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담은 것이겠다. 아울러 청와대 조직이 그런 언어에 대한 심리 반응을 대통령과 공유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일종의 동일 언어집단이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단사고 오류의 대표적 사례라는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의 경우, 당시 케네디 행정부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있었지만 그런 사람을 따로 불러 “대통령이 이미 결심했으니 더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대통령 심기를 보호하려 했던 ‘마인드가드’(mindguard)가 있었다. 집단 안에 있으면 혼자일 때보다 더 위험한 결정을 쉽게 내리고, 더 극단적인 쪽으로 치닫기도 쉽다. 이른바 ‘그룹시프트’(groupshift)다.
뚜렷한 목표로 강하게 뭉친 집단에선 언어도 다르게 쓰인다. 나치 독일의 문서는 유대인 학살과 수용소 이송을 ‘최종 해결책’이나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표현하도록 한 ‘언어규칙’(Sprachregelung)이 강제됐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렇게 자기최면을 가한 탓에 쉽게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국기’를 내세우는 청와대의 언어규칙도 국민을 오도하고 자신을 속이려는 최면이 아닐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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