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한때 사회이론이 골몰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단연코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사회이론이라면 모름지기 이들이 누군지 밝히고 그 특성을 헤아리는 게 해야 할 몫이었다. 다수인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은 구구했고 또 그만큼 역사의 부침이 새겨져 있다. 퍼뜩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여럿이다. 대중, 군중, 민중, 인민, 시민, 공중, 게다가 얼마 전부터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다중이란 이름까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름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똑같다.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한데 묶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그들은 적어도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대중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제법 앞자리에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이름이 있을 것이다. 소설 제목으로 더 알려진 이 이름은 모두의 눈에 어른거리게 된 바로 다수의 인간들에게 시선을 모으는 데 전무후무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들을 가리키려 마련된 이름이 레미제라블, 즉 비참한 자들이었다. 이 이름은 당시 그보다 더 세상에서 힘을 쓰던 이름과 겨루어야 했다. 그것은 ‘위험한 계층’이란 이름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폭도나 도당에 가까울 이 이름은 19세기 중엽 유럽을 휩쓸었던 노동자들의 반란과 저항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유럽을 휩쓸었던 노동자들의 폭동은 부르주아 계급을 불길한 공포로 몰아넣었을 게 분명하다. 누구의 눈길에 위험스런 이들은 어떤 이의 눈길이 미칠 때 비참한 자들로 바뀐다. 그리고 다수인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내고자 씨름한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하나둘씩 나타난 이름들이 근로대중, 인민, 프롤레타리아트 같은 이름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이름의 연대기가 없지는 않다. 민족이나 인민, 민중 같은 이름은 신경의 촉수를 건드리는 낱말이었고 여느 경우에는 금지되거나 또 어떤 자리에서는 장려되는 이름으로 뻑뻑한 시간의 밀도를 헤치고 나왔을 것이다. 여름휴가를 보내려 작정을 하고 베트남을 찾았다. 월남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세대인 나에게 베트남이란 이름은 언제나 막연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왠지 여행객으로 거길 찾는다는 게 뻔뻔한 짓 같아 미루고 미루던 여행을 감행했다. 며칠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배회하던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의 흔적도 도이머이(쇄신) 이후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후과도 아니었다. 거리를 배회하다 모퉁이를 지나면 어김없이 공원이 나타나는 풍경에 나는 반하고 말았다. 나른히 더위를 쫓는 노인들, 휴대용 전축 소리에 맞춰 사교춤을 추는 중년들, 조심스레 벤치에 앉아 소곤대는 젊은 연인들, 몇 푼을 주면 빌려주는 전동 휠이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상 주변의 공터를 달리는 아이들. 그들은 각자 알아서 즐겁게 저녁나절을 소일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허무맹랑하게 행복해졌다. 무엇보다 여럿이 함께 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럴 자리가 기꺼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에 나는 들떴다. 물론 그런 것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공원이란 다수인 자들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쇼핑몰뿐인 세계에서 살다 온 내게 그곳이 미덥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럿인 자들, 그들이 단지 유행과 여론을 가리키는 자들로 셈해지지 않고 어엿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갑자기 여럿인 자들을 위한 오늘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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