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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혐오와 사드 / 후지이 다케시

등록 2016-08-14 18:02수정 2016-08-14 18:53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인천상륙작전>을 보았다. 벌써 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는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혐오 영화’ 정도가 될 것이다. 인민군 치하의 인천을 무대로 남한 첩보부대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이 영화에서, ‘인민군’이나 ‘공산주의(자)’는 역사적 실체와 무관하게, 놀라울 정도로 잔인하고 비열하게만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실제로 대량살육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을 비롯한 첩보부대원들인데도, 살해당하는 인민군들이 아무런 인간성도 없는 ‘적’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주인공들의 인간성을 의심하거나 인민군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상력의 봉쇄는 ‘혐오 담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여성’이든 ‘동성애자’든 그 범주로 묶인 이들은 각자가 지닌 역사성을 빼앗기고 초역사적인 어떤 본질로 환원된다. 그들은 개인일 수도 없고, 오직 그 범주로만 이해되는 절대적인 타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타자이기에 그들을 대하는 방법은 배제(극단적인 경우에는 절멸)나 지배밖에 없다. 이런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힘뿐이다.

혐오 범죄와 같은 형태로 혐오 담론들이 실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구체적 계기가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도입된 뒤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가 그 계기다.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와 그것이 지닌 포섭 전략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들이 세금이 흑인 미혼모가 먹고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식으로 복지정책을 공격한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소수자’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인종주의와 같은 기존의 차별의식과 결합시키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렇게 포섭에서 배제로 국가가 전략을 바꾸면서 생겨난 것은 국민국가의 실질적인 죽음이었다. 국가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제 국민통합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론’의 분열뿐, 이 극단적인 계급사회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이렇게 국민국가가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가 등장한 것은 상징적이다. 사실 한국전쟁 자체가 국민국가의 해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민족의 분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처음부터 국민국가로서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남한 땅에 사는 주민들을 ‘국민’으로 포섭하기 위한 노력은 있었다. 특히 1949년에는 좌익들을 포섭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으며 그것을 위해 정부 스스로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좌익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46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70%나 되는 이들이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했던 남한에서 정부가 그러한 색채를 띠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때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군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백년 역사 속에서 1949년 7월 초부터 1950년 7월 초에 이르는 1년은 유일하게 한반도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은 시기였다. 미군이라는 압도적인 폭력장치가 철수하면서 정부는 그 지지 기반을 국민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맥아더의 건의로 미 지상군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오면서 형세는 역전되었다. 한국 정부의 포섭 자세는 사라지고, 그것을 대체한 것이 좌익에 대한 학살과 악마화였다.

한국전쟁 때부터 이어져온 이런 혐오의 역사는 현재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혐오가 강력한 힘을 찾게 하고 또 그 힘은 혐오를 재생산시킨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게 오늘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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