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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선희의 밑줄 긋기] 폐지 줍는 노인, 오래된 미래

등록 2016-08-04 18:16수정 2016-08-04 20:07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대부분의 노인은 가난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일해야 했다. 노년을 대비해 저축을 할 만큼 충분히 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회에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도덕적 규범이 있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았다. 자식 또한 가난에 시달렸고, 어떤 자식은 부모를 외면했다. 노년은 가난하고 아프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인류가 이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20세기 초 공적 연금 제도가 등장하면서다. 보수주의자이지만 일찍이 연금의 중요성을 알아챘던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1884년 제국의회 연설에서 “재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험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엄청난 것이다. … 그것은 국가에 의한 사회주의다”라고 말했다.(팻 테인 외 <노년의 역사>)

1960년대 이후 서구 선진국의 국민들은 대부분 하나 이상의 연금을 받게 됐다. 이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을 가꾸며 오후 티타임을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은 연금제도 덕택이다.

한국 노인들의 현실은 여전히 어둡다. 늙어서까지 일하지만, 가난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31.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위, 빈곤율(49.6%)은 1위, 자살률(10만명당 55.5명)은 압도적 1위다.

무엇보다 연금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28년, 전국민으로 확장된 지 17년밖에 되지 않았다.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36%만 국민연금을 받고, 액수도 많지 않다.(평균 48만원)

현재 노인들의 불행을 어쩔 수 없는 걸로 치면, 그럼 앞으로는 나아질까.

국민연금 같은 소득비례형 연금(자신의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수다. 서구에서 소득비례형 연금이 정착된 것은 2차 대전 이후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누리면서 완전고용이 이루어진 덕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성숙해야 할 시기에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 영세 자영업자도 많다. 잦은 이직과 실직, 낮은 소득 때문에 보험료를 꾸준히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노후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못 받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이라는 의미다.

기초연금의 역할이 주목받는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국가가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연금이다. 복지 선진국은 소득비례형 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각 나라 현실에 맞게 조합해 국민들의 노후소득을 보장한다.

지난달 25일로 기초연금이 시행된 지 2년이 됐다. 2007년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을 박근혜 정부 들어 기초연금으로 개편하고 액수를 두 배(최대 20만원)로 올렸다. 20만원도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노인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또 중년층·청년층의 불안한 노후 준비를 생각한다면, 이제 한발 더 나아갈 때다. 야당들은 지난 총선 때 모두 기초연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려면 5조원 이상의 추가 재정(현재 10조6천억원)이 필요하다. 만만치 않은 액수다. 하지만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공정한 증세를 한다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는 규모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노인 빈곤은 단지 노인들,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을 다니며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산층, 그런 직장마저 얻지 못해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층 모두의 문제다. ‘폐지 줍는 노인’은 ‘헬조선 세대’의 미래일지 모른다. 현재의 폐지 줍는 노인도, 미래의 폐지 줍는 노인도 모두 방치해서는 안 된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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