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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정의는 간데없고 / 이춘재

등록 2016-08-02 18:36수정 2016-08-02 19:10

이춘재
법조팀장

돌이켜보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다. 현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실제 사건이 됐으니 말이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삼류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이다.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기사를 처음 쓸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현직 검사가 전문 투자가도 엄두를 못 낼 비상장 주식 ‘몰빵’ 투자로 120억원대의 대박을 터뜨리긴 했지만, 그래도 주식은 제 돈을 주고 샀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명색이 사정기관의 중추인 검찰 고위 간부 아닌가. 금융 관련 수사 전담 부서장을 지냈기에 직무 관련성 정도는 의심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의심에서 시작된 기사였다.

하지만 소박한 의심은 곧 엄청난 사실로 드러났다. 진 검사장과 함께 넥슨 주식을 매입한 김상헌 네이버 대표가 “주식 살 때 진 검사장이 사는 줄 몰랐다”고 한 증언이 그 전조였다. ‘친구들과 협의해서 함께 샀다’는 진 검사장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내 돈 주고 샀다’는 그의 해명도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언론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기사를 직접 쓰는 기자들조차 놀랄 정도로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그는 현직 검사장으론 처음으로 검찰에 구속된 신세가 됐다.

첫 기사에 대한 법무부 고위 간부들의 반응은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하다. ‘검사는 주식 투자하면 안 되나. <한겨레>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느냐’는 저급한 항의에서부터, ‘그런 친구를 두지 못해 아쉽다’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검사다운 구석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검사다운 반응은 검찰 밖에서 나왔다. 금융 수사 전담 부서에 배치됐을 때 부인까지 주식 투자를 못하게 했다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도덕불감증에 혀를 내둘렀다. “검찰에 정의는 간데없고 출세만 남았다.” 검찰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의 탄식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다.

진경준의 출현은 이미 예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다 된서리를 맞은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 검사들은 정의를 추구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난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의 좌천은 생생한 본보기다. 가족 전체가 특권과 탈법으로 살아온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어떤가. 다른 공직자라면 진작 물러났어야 할 각종 의혹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은 ‘그래도 출세가 최고’라는 속물근성을 따르도록 강하게 유혹한다. 공익의 대표자가 되기보다 사리에 밝은 속물에 섞이는 게 훨씬 쉽기 마련이다. 검찰에 그동안 수많은 ‘진경준’과 ‘우병우’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명예를 걸고 다짐합니다.” 지난 1일 검사 임관식 때 로스쿨 출신 신임 검사 39명이 낭독한 검사 선서문의 한 구절이다. ‘진경준’도, ‘우병우’도 20여년 전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까마득한 후배들한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정의는 간데없고 출세만 남은’ 검찰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조언할까.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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