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휘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작은아들의 샷 모습. 이렇게 두 발이 뜬 채 하는 스트로크는 원래 반칙이다.
우리 집 거실 당구대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집이 크냐”, “층간소음 민원은 없느냐”는 질문과 함께 나를 당황케 하는 것은 “부인이 엄청 마음이 넓은가봐요”이다. 여기에 솔직한 답변을 하려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 내 양심에 상처가 날 수 있으니 삼가기로 한다. 다만 “아이들을 당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남편 말에 귀가 살짝 팔랑거릴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이란 정도는 얘기할 수 있다.
여느 동호인이 그렇듯 내 꿈도 한때 당구선수였다. 1993년 12월 군대 입소날 아침 어머니한테 “동네 벨기에당구장에 밀린 게임비 8만원 좀 갚아주세요”라고 부탁한 뒤 306보충대를 향할 때만 해도 기자와 당구선수를 놓고 고민했다. 제대 뒤 내게 당구 자질은 없다는 처절한 성찰 끝에 <한겨레> 기자가 됐다.
어린 두 아들은 상황이 다르다. 중2, 초6이니 가능성은 23년 전 나보다 훨씬 크다. 2010년 한국 국적자로는 처음으로 세계스리쿠션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고 김경률 선수는 경남 양산중 3학년 때 처음 큐를 잡았다. 2012년까지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네 차례나 우승하고 조만간 한국 당구판 접수를 눈앞에 둔 약관의 김행직(24) 선수 정도가 초등학생 때 이미 ‘신동’ 소리를 들은 정도다.
게다가 조재호, 최성원, 강동궁, 허정한 선수 등 한국 스리쿠션의 빛나는 별들도 대개 아버지가 운영하는 당구장이나 아는 형들 따라간 동네 당구장에서 당구를 쳤다. 어릴 적 제 집 거실에서 연습했다는 얘긴 아직 못 들었다. 그런데도 천혜의 조건을 갖춘 두 아들은 아직 당구에 몰입하지 않는다. 늦기 전에 피시게임의 마수에서 벗어나 거실 당구대와 친해지길 바랄 뿐이다.
9월 초 스리쿠션월드컵이 열리는 경기 구리시에 아이들과 함께 갈 계획이다. 이른바 ‘4대 천왕’으로 불리는 토르비에른 블롬달(스웨덴), 프레데리크 코드롱(벨기에), 딕 야스퍼르스(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같은 지구별 최강자의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사인도 받다 보면, 당구의 신비한 마력에 빠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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