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영국인들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자 미국 잡지 <뉴요커>의 이름난 유머 칼럼니스트인 앤디 보로위츠는 영국인들이 오래 누리던 ‘특권’을 스스로 걷어찼다고 조롱했다. ‘미국인은 우리보다 훨씬 멍청하다’고 주장하며 지적인 우월감을 만끽할 수 있었던 권리에 애도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젠 미국인을 멍청하다고 놀릴 자격이 없단다. 보로위츠는 영국 유권자들이 “이 나라에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유쾌한 스포츠, 즉 미국인 바보 만들기 놀이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줬다”고 불평하는 맥줏집 주인의 말을 전했다. 영국인들이 유쾌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진 걸까. 맥줏집 주인은 말한다.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그러나 난 아직 희망을 갖고 있다. 11월이 되면, 미국인들은 다시 한번 우리보다 더 바보가 될 것이라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인들을 바보라고 놀릴 수 있는 권리를 다시 얻게 된다는 얘기다. 설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겠느냐고? 지레짐작하지 말자.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없다. 벌써 절반이 지나간 2016년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을 가진 게 한두번이 아니다. 가장 멍멍한 타격은 당연 트럼프가 가했다. 그는 여성 앵커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고, 멕시코인들을 성폭행범으로 몰아 막말을 하고,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막겠다고 했다. ‘에이~ 저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대선 후보가 되겠어. 조금 있으면 고꾸라지겠지.’ 주류 언론과 정치인, 학자들도 트럼프를 멸시하고 천대했다.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자,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뒷북을 쳤다. 트럼프의 지지율 추이는 객관적 수치로 나와 있었다. 짐짓 낮잡아 보고 스스로 눈을 가린 탓이다. 하나는 지구 정반대편에서 왔다. 브라질 의회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시작할 확률은 낮다고 봤는데 착각이었다. 부정부패에 물든 브라질 의원들의 생존 의지를 얕잡아 본 게 실수였다. 뭐 묻은 개들은 호세프 대통령을 물어뜯어야 제 몸에 묻은 무엇이 가려질 것으로 판단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잡아 검찰의 반부패 수사를 찍어누를 속셈이다. 영국은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국민투표 당일 출구예측조사만 해도 유럽연합 잔류가 4%포인트 앞섰다. 2015년 총선 때 보수당과 노동당이 박빙이라거나, 또는 노동당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보수당의 압승으로 결과가 나와 수사당국의 조사까지 받아야 했던 여론조사기관들이 이번에 제대로 했겠거니 생각했다. 더욱이 잇속에 밝은 영국인들이 경제적 타격을 무릅쓰고 브렉시트를 택하겠는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8%포인트 차이로 탈퇴 진영의 승리였다. 한국도 빠지지 않는다. 4월 총선 결과 야당들이 ‘흩어지면 잘산다’는 것으로 나왔다. 뭉쳐야 산다는 상투적 도식은 깨졌다. 트럼프나 브렉시트 등 일반의 예상을 깬 현상에서 두드러진 것은 ‘먹물’ 엘리트 집단과 노동자 등 대중들 사이의 거대한 간격이다. 무지몽매한 대중들이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비난은 궁색한 ‘정신승리법’이다. 그랬다가는 계속 바보 되기 십상이다. 기존 질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고 틀에 갇혀 있는 먹물들한테는 이젠 세상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결정 뒤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상위 1%에는 좋았지만 나머지(99%)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난 이런 상태가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계속 경고해왔다. 오늘, 그날이 닥쳤다”고 했다.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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