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저는 6월에 복직할 예정이지만, 우리 아이는 친정엄마가 봐주실 거예요. 늦게까지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정말이에요. 아이 할머니가 애가 너무 어리다고 오래 맡기지 말라고 하세요.” 육아휴직 종료가 머지않았던 2013년 봄, 나는 집 근처에 평이 나쁘지 않은 한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입학 면접고사’를 치르고 있었다. 그해는 이른바 ‘무상보육’이 미취학 모든 연령대로 확대되면서, 접근성이나 입소문이 좋은 편인 어린이집들은 그야말로 ‘갑님’이 된 상태였다. 몇 차례 상담에서 ‘친절한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세상 물정을 알게 됐다. 동네 소문으론 직장맘은 기피 대상 1호라 하니, 면접 전략을 세워야 했다. 무조건 친정엄마의 지원사격을 강조했다. 상담 선생님 앞에 앉아 “나는 사실상 직장맘이 아니다”라고 핏대를 올렸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신문사의 빛과 소금이 되겠습니다” 수준의 ‘구라’를 풀던 취업준비생 시절이 얼핏 스쳐갔다. 상담 선생님은 친절했지만, 단호했다. 원 사정을 고려해서 최종 연락을 드릴 테니 일단 전화번호만 적고 가라고 했다. 현관을 빠져나오는데, 한숨이 터져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내 아이는 한 어린이집에서 거처를 찾았다. 이후 직장맘한테는 가장 감읍할 조건이라는 ‘어린이집+친정엄마 보육’으로 수년째 어찌어찌 버텨가는 중이다. 7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맞춤형 보육’이 논란이다. 우리 나이로 1~4살 아이들(0~2살 반)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보육은 대개 아침 9시 등원, 오후 3시 하원으로 자리잡은 어린이집 운영 방식을 다양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맞벌이 가정 보육 수요에 맞추어 아침 7시30분에서 저녁 7시30분까지 이어지는 종일반 운영을 독려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맞춤형(6시간)과 종일형(12시간)으로 제도를 분리해 보육료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사실 지금껏 12시간 보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린이집의 수지타산 차원에서 종일반 아이들도 ‘알아서’ ‘개인 사정’으로 일찍 하원하는 방식이 정착됐을 뿐이다. 직장맘들은 하릴없이 하원 뒤 육아도우미를 따로 구하거나 친인척한테 기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맞춤형 보육이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실 제도의 설계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종일형은 하루 12시간 보육인 반면에, 맞춤형은 하루 6시간에 한 달 15시간까지 추가 보육을 허용하는 형태로 부담이 적다. 그런데도 한 달 보육료 차이는 연령별로 3천~2만6천원에 불과하다. 민간 어린이집들이 순순히 수긍할 리가 없다. 직장맘의 열등한(?) 처지를 모르고 덤볐던 초보 엄마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한동안 직장맘들은 법대로 주장하는 게 얼마나 뻘쭘한 일인지를 거듭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또 모른다. 세상엔 운 좋은 일도 있으니…. 어느 초보 직장맘은 정부의 선한 정책 의지를 잘 따르는 ‘착한 어린이집’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 직장맘은 감읍하여 아침 6시에 벌떡 일어날 것이다. 서둘러 씻고 준비하고, 7시쯤 칭얼대는 아이를 재촉해 어린이집으로 향할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 우유컵을 뒤엎고,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어르고, 윽박지르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이후 붐비는 출근길을 빠져나와 온종일 쫓기듯 일의 바다를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직장맘은 아마도 ‘칼퇴근’을 해야 할 것이다!! 12시간 종일반 천운을 따냈다면 7시 반에 아이를 찾기 위한 칼퇴근쯤은 손쉬운 행운일 수 있다. 굿 럭!! 힘을 내시라, 동료 직장맘 여러분!!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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