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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브렉시트…이미자와 비욘세 / 권태호

등록 2016-07-06 18:38수정 2016-07-06 22:14

권태호
국제 에디터

미국 뉴욕, 빌 헤네시(64). 25년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다. 늙은 그에게까지 돌아갈 새 일자리는 없었다. 20년 전 평생 살리라 생각했던 집을 팔아 매달 집세 2700달러를 낸다. 젊은 날, 베트남전 반대 시위 때도 ‘대학생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무심했던 그가 매일 1시간 지하철 타고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집회 열리는 맨해튼 리버티 파크에 와 하루종일 물끄러미 앉아 있다 돌아간다. 늙은 헤네시의 저항이다. 2011년 10월 뉴욕에서 만난 헤네시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은퇴해도 다른 일자리 쉽게 찾을 수 있던, 연금으로 생활비 충당할 수 있던.

영국 선덜랜드, 켄 워커(59). ‘탈퇴에 투표하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펍에서 맥주를 들이켜는, ‘한때 잘나갔던 도시’의 은퇴한 노동자는 “주식시장에 돈 한푼 없고, 외국 나갈 일 없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회한다고? 천만에.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했다.

‘브렉시트 날벼락’을 맞고 기사를 쏟아내던 초기에 문득 의구심이 일었다. 은연중 ‘브렉시트=나쁜 것, 브렉시트 반대=진보’라는 관점이 <한겨레> 기사에 녹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에프티에이 철회하고, 티피피 탈퇴하겠다”는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도 우려감이 섞여 있다. 본질은 다르지만, <한겨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상황은 뭔가?

‘브렉시트’를 보는 시각 중 하나가 세계화에 좌절한 이들이 이판사판으로 택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의 현재와 미래’를 그렸다는 <세계는 평평하다>(2005)를 보면, “이제 많은 일자리가 아웃소싱될 세계화 3.0 시대에 개인은 사고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결코 평범해선 안 된다.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아웃소싱할 수 없고 디지털화할 수도 없고 자동화할 수도 없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이뤄보려 애썼다. 그런데 20여년 기자 경험으로 확신하건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

마을에서 이미자 ‘동백 아가씨’ 하나만 멋들어지게 불러도 ‘우리 동네 명가수’라는 자자한 칭송을 받던 이들이, 텔레비전 생겨나니 김추자, 펄시스터즈처럼 춤도 춰보라 소리 듣더니, 어느 순간 완벽에 가까운 군무와 노래로 무장한 소녀시대 수준을 넘어 이젠 세계화라며 비욘세 수준에 맞추라 한다. 불가능한 수준을 제시하고 이를 ‘경쟁력’이라 불러 모두에게 열패감을 안긴다. 돈을 많이 안 받는 것도 경쟁력이다. 영·미 노동자는 중국 노동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2011년 뉴욕에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먹고 산다”는 구호가 거칠었는데, 2016년 영국에선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 집세도 오르고, 병원 가면 너무 오래 기다리고, 일자리도 없고”라 한다. 자신들을 ‘99%’라 자처하는 이들의 2011년 표적은 월스트리트의 상위 ‘1%’였는데, 2016년 표적은 이민자인 하위 ‘1%’다. ‘그 1%’는 너무 멀고, ‘이 1%’는 너무 가까운가?

2011년 뉴욕에는 20대 청년과 60대 노인이, 미국인과 외국인이, 흑인과 백인이 뒤섞여 조화를 이뤘는데, 2016년 브렉시트에는 ‘우리끼리’만 남았다. 2011년 리버티 파크에는 미 전역, 심지어 유럽에서도 전화 걸어 ‘공원에 피자 200판’ 기부하는 또다른 ‘세계화’가 이뤄져 좁은 공원 안에 음식이 넘치고, 사람들은 ‘필요만큼’ 가져갔는데, 2016년에는 내게 피해 닥칠까봐 조바심 내고 이나마 가진 것마저 잃을까 잔뜩 웅크린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라 했는데, 5년간 역사는 진보한 것인가?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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