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앨런 그린스펀(79)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18년이나 집권해 온 ‘경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는 어리숙해 보이는 뿔테 안경 너머에 실물경제에 대한 남다른 후각, 특유의 카리스마와 은유적 화법을 갖추고 시장과 교감했다. ‘그린스펀의 정책과 전략을 계승하겠다’는 후임자의 다짐에 월가는 반색했고 주가는 올랐다. ‘그린스펀 효과’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연준은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공급량과 금리를 결정한다. 금융의 실물경제 지배력이 확고해진 뒤로는, 사실상 세계의 중앙은행 구실을 하는 셈이다. 뉴욕과 런던, 홍콩의 투자자들은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제 분석가들은 그의 화법과 행간을 해석하는 데 매달린다.
‘그린스펀 18년’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을 극복하고, 그린스펀 재임 중에 두 차례의 호황기를 맞았다. 월가와 정치권이 그의 퇴장에 찬사와 아쉬움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적 학자들은 그를 ‘거품을 재생산하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혹평한다. ‘미스터 버블’이라는 별칭까지 붙여놨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공격적인 성장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달러를 풀었고, 인플레가 통제되는 한 기꺼이 거품을 용인했으며, 거품 후유증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자. 90년대 미국 경제의 10년 장기 호황은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로 시작됐다. 연 8%를 웃돌던 연방기준금리를 연 3%대까지 내렸다. 2000대에 머물던 다우지수는 90년대 중반 6000대로 급등했다. 많은 학자들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했고, 그린스펀 역시 ‘비정상적 과열’을 경고하며 금리 인상의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비개입 정책’으로 돌아서며 금리 카드를 내려놓는다. 정보통신 혁명이 가져온 높은 노동 생산성이 임금(물가) 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을 선택한 것이다. 예상대로 물가는 통제됐고 성장은 지속됐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과열은 필연적으로 자산 거품을 불렀다. 2000년 다우지수는 1만2000까지 치솟았다. 그린스펀은 훗날 “90년대 말 (금리를 올려) 주식 거품을 터뜨리려 했다면 더 큰 혼란이 왔을 것”이라며 자신의 선택을 옹호했다.
거품 붕괴로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성장률이 연 1%대까지 떨어지자 연준은 전후 최저 수준인 연 1%로 금리를 끌어내렸다. 연준의 의도대로 경제는 2002년부터 다시 소비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다. 90년대 호황기의 ‘인플레 억제제’가 높은 생산성이었다면, 이번엔 값싼 중국 상품이 그 노릇을 대신했다. 막대한 군비와 감세, 사회보장 재정은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각국에 달러 채권을 팔아 충당했다. 통화 팽창은 부동산 값을 올렸다.
미국 투자자들 사이엔 ‘경기가 나빠지면 돈을 풀겠지’라는 ‘그린스펀 옵션’ 현상이 있다고 한다. 그의 경기부양적 통화정책 기조에 대한 믿음이 일종의 종교처럼 굳어져 있다는 얘기다. 연준이 지난해부터 금리를 11차례 연속해 인상했는데도, 장기금리는 한동안 거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년에 부동산 거품 우려를 거듭 경고한 뒤에야 조금씩 술렁이는 분위기다.
그린스펀은 “수수께끼 같다”고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거품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며, 거품은 터져 봐야 안다”는 그의 소신을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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