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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노무현의 도전 남경필의 도전

등록 2016-06-15 17:27수정 2016-06-15 19:17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를 통째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아예 개헌을 하자고 했다. 이유가 뭘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고 했다. 기득권 구조를 깨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 몰려 있는 정치와 경제의 기득권을 분리시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은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경필 지사는 기득권 정당인 새누리당 소속이다. 수도권 집중의 수혜 지역인 경기도의 현직 지사다.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기득권 구조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좀 놀랍다. 대통령 자리를 탐하는 야심가의 공학적 주장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경기도 인구는 1300만이다. 2020년까지 몇명이 될지 계산을 해봤다. 1700만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전체 인구의 34%다.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60%가 몰린다. 이런 상태로 청년실업, 저출산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망한다.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의 원인을 서울에 집중된 기득권에서 찾는 것은 상당한 통찰력이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강점은 집중력이었다. 사람과 권력과 돈이 서울로 몰렸다. 서울은 발전과 효율의 상징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사정이 달라졌다. 정치와 경제를 한손에 틀어쥔 서울은 이제 발전을 가로막는 비효율의 상징이다.

남경필 지사 이전에도 그런 주장을 한 정치인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뒤 실제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다. 국회는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수도 이전은 관습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 논쟁의 바닥에는 법리가 아니라 사회 세력 간 대결과 충돌이 깔려 있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중앙과 지방의 격돌이었다. 경기고, 서울법대 출신의 이회창 후보는 ‘중앙’의 상징이었다. 부산상고 출신의 노무현 후보는 ‘변방’의 상징이었다. 변방은 지방분권을 요구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단순히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 전술이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영호남 분할 구도에서 여러 차례 지역의 벽에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좌절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그는 지역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도한 중앙집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권력과 자본이 강고하게 결합된 ‘서울’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지역 갈등의 본질이라고 파악했다. 그가 1990년대 초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고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지방분권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이처럼 오랫동안 축적된 철학적, 실천적 성찰과 각성에서 나왔다. 당시 우리 사회의 최대 모순이었던 ‘망국적 지역감정’을 무너뜨리고 지역 균형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희대의 처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뻔뻔하고 집요할 수 있는지 간과한 것이다. 그렇게 행정수도 이전은 물거품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이 어떻게 대한민국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그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세력을 규합하지도 못했다. 이번엔 남경필 지사의 차례다.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기득권을 해체하기 위한 수도 이전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남경필 경기지사가 이뤘으면 좋겠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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