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삼성전자처럼 직급을 없애고 모든 호칭을 ‘프로’로 바꾼다고 치자. 초선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나 최경환 의원을 김 프로, 최 프로라고 부른다고 혁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에서 지더니 아예 근본 없는 정당이 됐다는 소리나 들을 공산이 크다. 구글처럼 업무시간의 20%를 마음대로 쓰도록 하면? 예상하겠지만 ‘의원들이 더 놀고 있다’며 욕만 바가지로 먹을 일이다.
혁신은 어렵다. 잘나가는 기업, 망했다가 살아난 기업들은 그 어렵다는 혁신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어느 기업에나 적용 가능한 혁신의 금문자, 만능키는 없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이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김희옥 전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어렵게 앉혔다. 미안한 말이지만 혁신이나 당이 처한 비상한 상황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다. 새누리당도 안다. 난세의 영웅, 이후 치세의 간웅이 될 힘도, 뜻도 없다는 것이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였을 것이다.
김 위원장 대신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앉히면 새누리당은 혁신에 성공하고 정당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3연속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제왕적 총재 시절에나 어울릴 인물이다. 그런데도 연거푸 혁신에 성공했다. 매력적이지만 애플 모델을 따라하는 것은 숨넘어가는 기업에도 인식론적 단절을 요하는 결단이다. 효율보다 절차가 중요한 정당에서는 차마 못할 일이다.
실패를 모르던 시절의 혁신과 망할 것 같아서 하는 혁신은 자세부터 달라야 한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보수혁신특위를 운영했다. 절박함이 없으니 남는 것도 없었다. 이번 혁신비대위도 절박함은 찾기 어렵다.
‘계파 청산’을 위해 우선 ‘계파 모임’부터 해야 하는 것이 새누리당 혁신의 현실이다. 폭발물이 아닌 바에야 계파 해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일부 당내 인사들을 보고 있자니 샛노란 얼굴에 언제나 환한 웃음을 짓는 장난감 캐릭터가 생각난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집 소파 밑에도 이 장난감회사의 미니피규어가 몇 개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지가 “블록 100억개는 소파 쿠션 밑에, 30억개는 진공청소기 안에 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장난감회사인 레고도 한때는 새누리당 처지였다. 레고의 조직은 성공에만 맞춰 있었다. 새누리당처럼 여당의 가을, 하락의 시절에 대응하는 방법을 몰랐다. 비디오게임으로 아이들의 눈이 돌아간 1990년대 말, 레고는 엄청난 적자에 1천여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 기업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혁신의 방법을 모두 수용했지만 잠시 늘었던 매출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새로운 사람, 신조직, 신기술, 신제품은 혁신의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망할 것이라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때, “핏속에도 블록이 흐른다”는 이들이 택한 혁신의 방법은 인간 중에 가장 변덕이 심하다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본질로 단순해지는 것이었다.
보수의 피가 흐르는 새누리당 의원 122명도 변덕스런 유권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보수정당의 본질로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집단지도체제를 단일화하는 조직개편은 일견 멋져 보이지만 다락방 장난감처럼 오래된 혁신이다.
영화 <레고 무비>는 죽어가는 악당 미니피규어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rest in pieces.” ‘영면하라’(rest in peace)는 말을 ‘블록 조각들 속에서 잠들라’고 비튼 것이다. 조각조각 쪼개지지 않으려면 보수정당의 원형질을 찾아가는 혁신을 해야 한다. 대통령 지시를 단순심플하게 따르는 정당은 우간다에도 있다.
김남일 정치팀 기자
김남일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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