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폐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아예 몰랐다. 건조한 날씨에 실내 습도를 높여 호흡기질환을 예방하고자 가습기를 썼다. 또 이 가습기에 세균이 살면 오히려 각종 감염병에 걸린다고 해 살균제를 사용했을 뿐이다.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고자 사용했는데, 오히려 심각한 폐 손상과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제품을 정부가 허가할 때에는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충분히 확인한 뒤, 작은 부작용만 있어도 이를 제대로 알리거나 아예 사용하지 말도록 조처했어야 한다. 위험한 물질이나 유해 환경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최근 담뱃갑에 넣는 경고그림의 위치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흡연이 일으킬 수 있는 각종 질환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담뱃갑에 넣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이 통과되자 보건복지부는 시안을 만드는 등 경고그림 도입을 추진했다. 경고그림의 목적은 흡연자가 이를 잘 보고 담배를 덜 피우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상단에 넣을 계획이었다. 담뱃갑 하단에 경고그림을 넣으면 담배를 팔기 위해 진열대에 놓을 때 경고그림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도 경고그림은 상단에 넣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달 22일 회의를 열어 담뱃갑의 상단에 경고그림을 넣도록 한 안을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담뱃갑 경고그림이 혐오스럽다거나 경고그림을 자주 보는 일반인의 경우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한 위원도 있었다. 심지어는 금연교육을 받은 어린 학생이 흡연에 대해 병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신적 피해 사례가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담배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내놓은 반대 논리와 유사하다.
이런 결정이 나오는 데에는 규개위 위원들 일부가 담배회사와 가깝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조사한 바를 보면 규개위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은 2012~2015년 담배회사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7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은 적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담배회사 사장직에 응모하기도 했다. 규개위 위원장은 변호사로서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속한 로펌이 담배회사를 대리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흡연 피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담배회사와 직간접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이들이 속한 규개위가 담뱃갑 경고그림을 규제의 일환으로 보고 이를 무력화하는 데에 일조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규개위 위원장이 속한 로펌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드는 회사의 변호를 맡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질환을 앓고 심지어 사망하기도 했지만, 가습기 살균제 회사와 이 로펌은 황사와 꽃가루 때문에 폐질환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담배회사들도 역대 흡연 피해 소송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폐암이나 후두암에 걸린 것은 대기오염 탓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고 각종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널리 증명된 사실이다. 담배회사가 아예 담배를 팔지 않으면 좋겠지만, 팔더라도 경고그림이 잘 보이도록 해 건강을 해치는 상품임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규개위도 13일 열리는 재심의에서 담배회사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규개위가 담배회사나 가습기 살균제를 만드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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