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 선출 당선자 총회는 활기와 웃음이 넘쳤다. 당선자 개개인은 어려운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이 무척 대견했을 것이다. 1주일 전 당선자 워크숍 때도 그랬다. 정권이 넘어가도 앞으로 4년간 이들 122명의 국회의원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야당이 제맛’이라는 말도 있다.
4·13 선거 뒤 3주일이 흘렀다.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이 2당으로 전락한 결과보다 패배 뒤 수습 능력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더 놀랍다. 친박 당선자들은 예상대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표를 몰아줬다. 당분간 새누리당에 큰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원유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저지한 ‘새누리당 혁신 모임’(새혁모)은 사실상 해산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의 전위대였던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패한 뒤 ‘10년 야당’을 했다. 분골쇄신, 와신상담, 환골탈태했다. 분열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오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서서히 여당 체질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구성원 개개인이 선당후사가 아니라 선사후당을 한다. 내 착각인지 몰라도 의원들의 배가 점점 더 나오는 것 같다.
“야당 경험 있는 의원들이 별로 없다. 늘 여당만 할 것 같은 착각 때문에 혁신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수도권 3선)
“19대에 이어 20대에도 함량 미달 의원들이 밀려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 아니었으면 구청장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류들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수도권 3선)
하기는 18대 국회 한나라당에는 ‘합리적 보수’, ‘개혁 보수’, ‘실용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꽤 많았다. 초선 의원들이 ‘민본 21’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개혁의 목소리를 냈다. 권영진·권택기·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영우·신성범·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황영철 등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강점은 폭넓은 스펙트럼이었다. ‘개혁 보수’에서 ‘원조 보수’까지 다 있었다. 친이명박 세력은 여당, 친박근혜 세력이 야당 구실을 했다. 여당 안에 여당과 야당이 다 있으니 진짜 야당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한나라당은 결국 그 힘으로 연속 집권했다.
연속 집권의 뒤안길에서는 스펙트럼의 한쪽이 무너지고 있었다. 19대 국회에서 남경필·김세연 의원 등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으로 개혁보수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박근혜-이한구 공천’이 관철된 20대 국회에서 개혁 보수는 더 퇴조했다. 영남의 3선 의원은 “당선자 명단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혁신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도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능력이 부족한 정당은 야당을 하면 된다. 수명이 다했으면 해산하면 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하는 집권여당의 책무가 막중하다. 구조조정, 양적완화 등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초대형 정책 현안이 눈앞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맡길 수 없다. 새누리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 임기 안에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골라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하고 동시에 뒷받침해야 한다. 야당의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둘째, 2017년 12월 대선을 잘 치러야 한다. 현재의 야당이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역량 있는 후보를 내세워 국민에게 좋은 대통령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왕이면 개혁 보수 성향의 젊은 후보를 발탁했으면 좋겠다. 이제 보수 기득권 세력도 세대교체를 시도할 때가 됐다.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오세훈 등 나이가 젊으면서도 정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대선후보로 나설 기회를 줘야 한다. 야당 지지자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여당 후보가 되면 그를 찍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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