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1980년대 외교문서를 보면,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의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두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한-일 사이 이간을 노리는 북한 공작으로 규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출판노동조합연합회는 1984년 2월 역사교과서 검정 실태 중간보고서인 ‘교과서 리포트 84’를 낸다.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비판 여론이 일자, 전두환 정권은 이를 북한이 개입한 행위로 보고 언론 보도 통제에 나선다. 일본 쪽에는 “적극적 수정까지 요구하는 것은 내정간섭적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대처’에 그친 것도 눈에 띈다.
일본 관련 현안에서 북한을 끌어들여 문제를 호도하려는 행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직후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이 정대협 앞에서 환영 집회를 열도록 청와대 행정관이 ‘요청’한 사안이 그런 사례다. 그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싸우지 말고 그럴 바엔 (12·28 합의에 반대하는) 정대협 가서 그 안에 있는 종북세력들한테 이의제기하는 게 낫지 않냐’고 얘기했다고 한다. 어버이연합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의 말이니 사실일 것이다.
‘북한 카드’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행태는 보수의 시금석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언론 간담회에서 자신이 밀어붙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대 정권을 모두 종북세력으로 모는 황당한 발언이다.
보수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온고(溫故)를 바탕으로 지신(知新)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세력 다수는 새것을 알기는커녕 옛것에 대한 반성조차 게을리한 채 상투적인 행태를 되풀이하니 딱한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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