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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습기 피해 키운 건 정부다 / 안종주

등록 2016-04-25 19:20수정 2016-04-26 08:40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물론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산모와 어린이를 다수 포함한 의문의 잇단 중증 폐 손상 사망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 뒤부터 계속돼온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뉴가습기당번 제조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가 아직 보상과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에도 물론 분노해왔다.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왜 이제야 하는지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긴긴 시간 동안 범죄자들은 증거를 인멸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정부에 고마워했다. 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법인 변경 등 옥시 쪽은 온갖 부도덕을 저지를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수사의 칼날이 신씨 재벌가 일족에게까지 다가오자 부랴부랴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해 ‘늑장 사과’를 한 롯데에 대해서도 환영보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해 기업 못지않게 정부에 대해서도 매우 깊고 크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2014년에야 첫 공식 피해 조사·판정과 구제를 해서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다. 2015년 2차 판정부터는 환경부가 맡고 있는데, 현재 조사·판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3차 피해 신고자는 1차 361명, 2차 169명을 더한 숫자보다 훨씬 많은 752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피해 신고가 들어왔으면 그에 걸맞은 특단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이들의 피해 여부를 신속·정확하게 판정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피해자와 가족들의 분노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3차 피해 신고자들에 대해 오는 2018년 말까지 판정을 하겠다고 했다가 비판이 일자 부랴부랴 2017년 말로 그 시기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다. 신속한 판정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 전담 환경보건센터 한 곳에 3차 판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맡겼다. 하지만 이 병원 의료진 등은 기존 진료도 벅차기 때문에 신고자에 대한 폐기능 검사와 전산화단층 촬영 등을 신속하게 제때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여러 차례 오가는 데 따른 교통비와 시간 부담, 그리고 숙박 등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와야만 하는 피해 가족들은 한가족이면 같은 날에 검사를 해달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요청을 해도 병원 사정을 들어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한다.

 안종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백서' 전 편집위원장
안종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백서' 전 편집위원장
1차 판정 당시 환경부 장관은 어떤 연유에선지 현대 과학으로 살균제의 유해성을 시판 전에 미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는 이른바 ‘불가지론’을 공개적으로 밝혀 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에 면죄부를 주려 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해 환경보건법상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해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단체의 주장에도 마이동풍으로 일관한 바 있다. 피해자들의 눈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행태들이었다.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폐질환과 관련해 서울아산병원뿐만 아니라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경험을 지닌 상당한 의료자원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환경부는 방침을 바꿔 올해 안으로 3차 판정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안종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백서' 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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