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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봄날, 달이 떴다 / 고영직

등록 2016-04-22 19:26

십년 전쯤 몇 명의 문인들과 함께 안성에 소재한 한겨레중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쓴 시와 산문을 모아 <달이 떴다>라는 문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2006년 개교한 이 학교는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탈북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남한 사회 적응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통일부 산하 디딤돌 학교로 탈북 청소년들의 특성화학교라는 점이 여느 학교와 다르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학생들의 작품에는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북녘 하늘 밑에 두고 온 부모님,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피맺힌 마음들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누가 쏟았는지 / 먹물 뿌려놓은 밤하늘 / 나랑 쏙 빼닮은 쌍둥이인 것 같아 / 칠흑 밤하늘에도 감격한다”(<응어리>)라든가, “밤하늘에 밝게 둥둥 떠 있는 저 달을 보면 / 울 엄마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과 / 밝은 모습이 보이네”(<엄마의 달>) 같은 표현을 보라.

‘먹물’처럼 까만 어두운 마음 상태인 청소년들이 ‘응어리’를 품은 채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달을 보며 북녘 하늘 밑의 소중한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알 수 있다. ‘달이 떴다’라는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달’이야말로 인류의 오래된 미디어였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해 4월 작고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방한 당시 “군사분계선 너머 북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마음의 결들을 읽어내려는 문화의 통합을 환기한 언명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들은 누구인가. 성서 속 배신의 아이콘인 유다적인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종편 등은 북한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아무런 여과 없이 유포한다. 아스팔트 극우를 자임하는 어버이연합, 재향경우회, 엄마부대 같은 친정부 보수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탈북자들을 값싸게 이용한다. 비국민의 ‘남한 주민 되기’ 프로젝트라고 해야 할까. 놀라운 건 그런 집회에 전경련이 후원한 내역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차원에서 보수단체를 지원한 것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최근 사태가 걱정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주홍글자가 찍힌 탈북자들에 대한 ‘혐오’의 이미지가 더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나누어진 마음 상태에서 온전한 마음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탈북 시인 최진이는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에서 한국 정착의 필수사항으로 탈북자들을 위한 상담 체계의 확실한 구축을 꼽는다. 상담(相談)은 서로 말을 주고받다 보면 마음의 화(火)가 풀리는 관계의 예술이다. 안심하고 자신의 사연을 말할 수 있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의 원리와 수용력의 원리를 구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어버이연합과 정권 간에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은 국가의 ‘오작동’ 상태를 드러낸다. 어느 탈북 청소년이 “방향 모를 어두운 인생길을 / 밝혀줄 달”(<쪼각달>)이라고 쓴 표현처럼, 우리 인생길을 밝혀줄 달은 뜰까. 십년 전 만난 탈북 청소년들은 지금쯤 이삼십대 청년이 되었다. 그 청년들이 자기 인생의 미래를 ‘길거리’에서 찾게 되지 않기를 나는 바라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탈북자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한반도 주민으로서 한 하늘 밑에 살고 있다. 오늘 밤 달이 뜰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길을 조금은 밝혀줄 봄날의 달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울수록 발밑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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