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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대선 내다보며 총선 읽기 / 김보협

등록 2016-04-17 19:31

이번에도 또 틀렸다. 여론조사와 정치인, 정치전문가들에 의존하는 언론의 선거 전망은 곧잘 틀린다. 그래서 민심은 늘 무섭고 선거 결과는 대체로 대이변이다. 기자생활 20년 중 절반가량을 정치 쪽에 있었지만 예측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보수적으로, 비관적으로 예측해야 그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와도 충격이 적다는 2012년 학습효과와 데이터가 아닌 감을 함부로 전해서는 안 된다는 직업윤리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은,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최종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두 가지밖에 없다.

앵그리 보터(Angry Voter, 성난 투표자)들에 의한 박근혜 정권 심판, 이로 인한 반사이익에 가까운 야권의 기대 밖 승리라는 결과를 접하고도 야권 지지자들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다. 이긴 것이 아니라 참패를 피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더 큰 것 같다. 이에 더해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뒷골이 땅기는 것 아닌가. 야권이 분열하면서 ‘산수’로 만들어놓은 총선 문제를 눈 밝은 시민들이 ‘수학’으로 풀어 그나마 이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놓았는데, 내년 대선에서는 ‘교차투표’라는 이번 총선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내년 대선이 4·13 총선 이후 만들어진 3당 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큰 만큼,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각각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후보를 내어 경쟁하든가, 아니면 새누리당 후보에 맞설 야권단일후보를 만들기 위해 또다시 피곤하고 지루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헌법까지 바꿔가면서 야권이 반길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하나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을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며 과거 유신체제 버금가는 권위주의 체제로 되돌리려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흐름이 분명하다. 1987년 민주화가 운동에 의한 민주화였다면 이번 총선은 투표에 의한 민주화라 부를 만한다. 먹고사는 문제라도 유능했으면 모르겠는데 숫자로 표현되는 모든 경제수치에 빨간불이 켜졌으니 정치권력을 바꿔야겠다는 의지가 높아진 것이다.

무 자르듯 단언해선 안 될 어려운 대목은, 더민주엔 새누리당보다 5석 많은(지역구 기준) ‘일시적이나마’ 제1당을, 국민의당엔 호남 제1당을 만들어준 민심이다. 특히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두고는 민주화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버리고 세속화됐다거나 “국민의당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선택한 것”(안철수 대표)이라는 ‘제 논에 물대기 식’ 해석은 좀 이른 것 같다. ‘민주주의’라는 같은 디엔에이를 공유하고 있는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개혁세력의 선택이 엇갈린 점은 분명하다. 정당투표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던 호남의 선택엔,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거대 야당인, 그리고 호남에서 십수년 동안 여당이었던 더민주가 보여준 게 뭐 있냐는 꾸지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 고향을 떠났지만 호남에 정체성을 두고 있고 호남을 좀 안다고 자부하는 처지에서 보면, 호남이 세속화됐다기보다는 오만한 더민주를 조지면서 야권 대선주자 폭을 넓혀놓는 노회한 선택을 한 결과라고 본다.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따라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당분간 내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누가 더 유능한가를 두고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어쩌면 야권 지지자들은 이번 총선 때보다 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이 한방에 훅 가기 전에는….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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