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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완전한 이별 / 서해성

등록 2016-04-15 19:13

마침내 귀신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석삼년 한국을 다스린 건 귀신을 등에 업은 통치였다. 그 귀신이 대중 부적을 받아 곧장 뒷걸음질로 스러져가고 있다. 기표소 투표 도장에 길흉을 가리는 점 복 자가 박혀 있기 때문일까. 영검스런 투표용지의 힘은 수구정권 8년을 단 하루 낮 동안에 찍어내 버렸다. 4·13 총선. 귀신과 함께 주권자 위에 군림해온 권력은 바야흐로 빨강 망토 속으로 황급히 몸을 감추려 하고 있다. 귀신 이름은 박정희다.

한국 전통 귀신 주류는 오래도록 원귀였다. 원통하게 죽거나 당한 자들이 대중의 무의식 사이에서 형성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려 달라붙는 게 상례다. 원귀란 당연히 약자였다. 군왕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 사도세자에서 보듯 억울하게 죽은 넋들 일색이다. 귀신이 현세 정치와 결합하면서 지배적 위치에서 대중을 을러대게 된 게 지난 대선이다. 반인반신으로 도처에 출몰하는 형용과 기념조형물은 그 권력의 주술적 생태를 응축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박정희가 다시금 사망을 향해 내쫓기고 있다. 애초에 죽은 그를 저승에서 불러낸 것 자체가 이 족속과 그 부녀에게 두루 비극이었다. 현 정권의 운명은 벌써 거기 배태되어 있었다. 귀신이 중심에 놓인 순간 현실은 말짱 소멸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신성불가침을 거역하는 이교도일 뿐이었다. 그에 따라 삼년 동안 한국 사회는 회고통치, 복고통치에 시달려야 했다. 이 권력에게 요순시대는 60, 70년대였고 국정교과서는 이를 성장세대에게 유포하는 선전물과 다를 게 없었다. 가족사와 공동체 역사를 바꿔치기하는 효도통치는 총선을 기점으로 개헌 내지는 더 강고한 단일지배를 구축하기 위해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권력 불소통의 본질은 대중에게 사고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과정을 거쳐 이윽고 일사불란한 통치구조, 곧 복종국가를 목표로 한다. 그 실감 어린 구체는 표현의 자유와 통신자유를 위축시키는 테러방지법이었다. 대중들이 느끼기에 이는 유신 부활이자 공포통치로 닥쳐왔다. 인정머리 없는 통치행태는 4·16 참사 처리과정에서 넌더리가 나게 겪은 참이었다. 자원외교 따위를 저지른 엠비정권에 대한 징계 불능, 경제파탄, 복지 축소, 청년실업, 선거용 북풍 등은 그 형제들이다.

징벌투표, 공포퇴치투표가 요체인 이번 총선은 기본적으로 여당과 종편을 포함한 선전기관 등의 패배였지 야당이 승리한 건 아니다. 국민들은 야당에 월계관을 씌워주기는 했으나 동시에 종아리를 걷어 회초리를 치고 있는 형국이다. 반사이익이란 거울 속의 진실일 뿐이다. 8년 동안의 부패와 무능과 독선을 새 의회로 소환해내서 징치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대선을 통해 두 야당을 내칠 터이다. 정략과 잔꾀가 아니라 개혁노선 협력과 경쟁만이 정권교체의 길이라는 게 역대 선거 이래 가장 혁명적인 참정권 행동이 지닌 참뜻이다.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주권자들은 현 정권 심판과 함께 박정희 귀신을 무덤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는 4·13이 나타내고 있는 명료한 징후다.구체제와 이별을 달성할 수 있다면 비록 고통스럽지만 삼년은 아까운 것만은 아니다. 망령과의 완전한 이별은 한국 사회를 비로소 21세기로 들어서게 할 터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두 해 전 오늘 아직도 소문만 무성한 대통령의 7시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건 거기서 해방되는 장막을 걷어내는 일로 맞춤이다. 삼백넷 넋들을 겨우 위로할 수 있게 된 첫 아침이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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