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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투표라는 것 해야 합니까?” / 김종철

등록 2016-04-07 20:01수정 2016-04-07 21:48

한국의 선거제도 아래서 신생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이것을 뚫지 않으면 늘 거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 기존 야당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택시를 타면 편하기는커녕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근년에 들어 부쩍 고령의 택시기사들이 많아졌고, 그들 대부분은 낯선 승객을 상대로 ‘정견발표’를 하기 일쑤이다. 승객의 반응이 신통찮으면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가급적 택시를 안 타기로 작정하고 지내는데, 엊그제는 조금 멀리 나갔다가 밤늦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했다. 제법 달렸는데도 늙은 운전사가 말이 없었다. 이 선거철에 이런 경우는 드문 ‘행운’이다. 다소 느긋한 기분이 되어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투표라는 것 해야 하는 겁니까?”

들어보니, 그는 이른바 ‘무당파’였다. 수십년간 택시 영업을 해왔다는 그는 오래전부터 선거날에는 투표소로 가지 않고 시골로 가서 개를 잡아먹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말했다. 냉소적인 어조로 봐서 그가 정치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개고기’ 운운하는 것은 이 나라 정치판이 너무나 한심하고, 꼴 보기 싫다는 말이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선거 백번 해도 하나도 안 바뀌는데 뭐 땜에 투표합니까?”

나는 이의를 달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역겹고 절망적인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온 장본인들의 책임을 엄중히 추궁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동시에 또 생각해야 할 것은,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실질적인 사회변혁을 성취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곧장 선거를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본시 민주주의란 인민의 자치(자기통치)를 의미한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구가 많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인민의 자치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대의제 민주주의뿐이라는 논리는 부르주아 학자·지식인들이 광범하게 유포시켜온 상투적인 거짓말이다.)

어쨌든, 인민의 자치가 민주주의라면, 선거로 대표자를 뽑아 그(들)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거란 어떤 경우에도 ‘엘리트들’만이 선출될 수 있도록 고안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고대 그리스 이래 거듭 확인돼왔던 문제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을 면밀히 고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란 ‘귀족’(엘리트)이 지배하는 과두정치를 위한 것이고, 민주정치를 위한 방법은 제비뽑기라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이것은 고대, 중세를 거쳐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의 자명한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땐가부터 선거에 의한 대의정치가 ‘민주주의’를 참칭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이것은 서양에서 부르주아계급이 사회경제적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건국 과정이었다.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다음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이 직면한 중심과제는 새로운 나라의 통치형태를 선택·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대항해서 치열하게 싸웠던 유럽의 낡은 통치형태, 즉 군주제를 채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전쟁 이전 뉴잉글랜드의 자연발생적인 자치조직(‘타운미팅’)의 전통을 살리는 통치형태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보다 부유한 엘리트 계층이었고, 새로운 나라의 통치 주체는 엘리트 계층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사실상 국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 의회 및 사법부로 구성된 연방공화국 체제였다. 그리고 대표자는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도록 규정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모델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라고 말했으나 실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알맹이(제비뽑기)는 제거돼버렸다. 이것은 물론 고의적이었다. 제비뽑기로 지도자·대표자들을 선출한다면, 다수 인민, 즉 무산자들이 정치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리되면 ‘엘리트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헌법 제정과 통치체제를 선택할 때, 그들의 핵심적 목표는 무산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사태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의도는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관철돼왔다. 그리고 그들이 설계한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메커니즘은 자유와 평등, 인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합당한 시스템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밑에서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으로는 낡고 부패한 기존의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역사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을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풍자적으로 날카롭게 지적했다. “선거로 정말 사회가 바뀔 수 있다면 선거는 벌써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지금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현재의 서구식 민주주의로써 인류사회가 직면한 엄중한 위기들에 대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변화를 비롯한 온갖 환경위기,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 현상 등은 이대로 가면 조만간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붕괴되고, 공동체 자체가 해체·파괴될 것임을 분명히 예고하고 있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엘리트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고안된 비합리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어떻게 합리적인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난제 중의 난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으로서는 기왕의 대의제 시스템에 조그만 균열이라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엘리트들을 위한 강고한 시스템이지만, 지혜롭게만 행동한다면 선거를 다수 민중의 이익을 위한 계기로 만들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썩은 시스템, 불합리한 선거제도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지금 선거 이외에 조금이라도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없는 이상, 선거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일찍이 대영제국의 강압적 식민통치에 맞서려는 투쟁 속에서 간디가 찾아낸 것은 ‘소금행진’이라는 기상천외의 비폭력주의 저항운동이었다. 소금에 대한 독점·전매권을 주장하는 식민당국의 방침에 맞서서 혹심한 탄압을 무릅쓰고 소금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자립, 자급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도 민중이 마침내 식민통치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가능한 ‘소금행진’은 어떤 게 있을까? 나는 이번 선거에 뛰어든 진보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세력의 정치 참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한국의 선거제도 아래서 오늘날 신생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뚫지 않으면 늘 거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 기존 야당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 그리고 그 논리의 귀결로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다음주 나는 녹색당을 지지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갈 것이다. 녹색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늘날 선거제도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평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를 분명히 표방·실천하고 있는 유일한 정치그룹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제비뽑기로 대의원을 뽑고,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온갖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풀뿌리 활동가들로 비례대표들을 구성했다. 그리고 녹색당의 선거 공보물은 단 한 장의 종이에 소박하게 인쇄되어 있을뿐더러, 오늘의 위기상황에 대해 가장 정확한 진단에 입각한 구체적인 공약들을 담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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