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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새누리의 ‘프로듀스 180’ / 김남일

등록 2016-04-05 19:29


영악하게도 1등보다 꼴등 발표를 맨 마지막에 하니 더 아슬아슬했다. 누구나 예상한 1등과 2등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 채 엉엉 울고 난 뒤, 마지막 순서인 11등 발표를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다.

“유권자는 현명했다.” 이런 맥 빠지는 분석은 총선뿐만 아니라 지난주에 끝난 걸그룹 국민오디션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래의 유권자가 될 10대들의 투표성향 일단이 드러났는지도 모르겠다. 걸그룹스러운 비주얼의 소녀들만 지지할 것 같더니 컷오프에 걸린 보컬 라인 소녀를 걸그룹 최종 멤버 자격이 주어지는 11등으로 밀어올렸다. 정통 걸그룹을 지지하는 이들은 실망한 반면, 프로그램 사회자는 “국민이 뽑은 보컬 포지션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걸그룹은 비주얼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를 잘하는 이들도 골고루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뭔 말인지 궁금하면 총선에 나선 새누리당 후보들이 틀어놓은 총선 로고송을 들어보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의 꿈을 이룰 이 순간/ 새누리 기호 1번 선택해/ 픽 미 픽 미 픽 미 업/ 누리 누리 새누리/ 기호 1번 새누리’. 새누리당이 걸그룹 국민오디션을 표방한 케이블티브이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타이틀 곡 ‘픽 미’(pick me)를 총선 로고송으로 골랐다. 고3 금지곡이 될 정도로 중독성 강하다니 탁월한 선택이다. 김무성 대표도 이 노래를 개사한 로고송에 맞춰 춤까지 추고 있다. 굳이 그의 춤까지 볼 필요는 없겠다.

2개월 전 ‘프로듀스 101’을 김 대표가 내세운 상향식 국민공천과 비교하는 기사를 썼다(<한겨레> 2월5일치 6면). “걸그룹 최종 멤버는 100%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됩니다”, “이제 새누리당 후보는 100% 국민 여러분이 공천합니다.” 결과적으로 걸그룹 오디션이 새누리당 공천보다 훨씬 더 국민공천에 근접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이한구라는 걸출한 ‘떴다방 공천 매니저’가 친박 쪽 행사 일정만 무리하게 잡았던 탓이 크다. 진박 노예계약 논란이 터진 뒤에야 “계약서에 도장 못 찍는다”며 뒷북친 기획사 대표 김무성의 책임도 못지않다. 걸그룹 공천이 새누리당 식으로 진행됐다면 최종 멤버 11명은 일단 대구 국밥집에 모여 인증샷부터 찍었어야 했을 것이다.

빨간색 막대기를 꽂아도 뽑아준다는 대구에서 내리 4선을 한 박근혜 대통령은 문 닫고 들어온 이들의 심정을 잘 모른다. 대선을 앞둔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는 당으로부터 비례대표 11번을 받았다. 그때 새누리당은 비례 25번까지 넉넉히 배지를 달았다. 감동은 없고 그냥 어정쩡했다. 당시 ‘박근혜 11번’을 주장했던 이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의 비례 2번이 재미없는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문 닫고 들어올 새누리당 의원의 등번호가 궁금하다. 한때 180번까지 장담하더니 이제는 “140번도 생큐”라며 엄살이다. 호남지역 행사도 못 뛰게 하고, 걸그룹 센터 자리도 기획사 대표와 친한 사람만 시킨다며 ‘유닛’으로 갈라섰던 두 야당이 혹시나 ‘완전체’로 합쳐 무대에 서는 게 싫은 거라고 사람들은 수군댄다.

유권자는 이번에도 현명할까. 여의도그룹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멤버도 있어야 하지만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도저히 함께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남일 정치팀 기자
김남일 정치팀 기자
“국민이 뽑은 포지션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여야의 마지막 등번호를 정할 때가 오고 있다. 불금을 보낼 예정인 나는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해장을 하고 사전투표를 할 것이다.

김남일 정치팀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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