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한 정신분석가에 대한 기사(‘심리상담실이 위험하다’, <한겨레> 3월15일치 1면·12면)가 나가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도대체 그 상담가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상담계에선 일부 상담가 때문에 윤리적 경계를 지켜온 대부분의 상담가들이 오해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상담 행위에 대해 사회가 무관심하고 무지할수록, 상담이 악용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센터 ‘닛부타의 숲’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1970년대 미국의 풀러 박사는 심리학자들의 윤리 실태를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미국 내 심리학자의 17%가 내담자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이런 사실이 공표된다면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것은 불 보듯 훤했다. 당시 이 연구에 기금을 제공한 미국심리학회는 협회 이익을 위해 이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발표하기를 거부했다.
2000년 이후 쓰여진 상담윤리에 대한 논문이 모두 합쳐 15편을 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예 실태조사 자체가 없었다. 국민 10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겪는 나라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져야 하고, 그만큼 심리 전문가들에 대한 조사와 관리도 잇따라야 한다. 상담가에 대한 자체 검증과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표적 기관인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심리학회 소속 회원이 1만명인 데 견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기타 상담 관련 자격증 수만 해도 4500종이 넘는다. 이들 자격증은 정부가 관리하는 허가제가 아니라 누구나 등록할 수 있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상담업은 사실상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자유업인 셈이다.
물론 수련 과정에서 내담자와 개인적 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엄격히 배운 상담자나 정신과 전문들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물리적인 위협과 폭력이 오갈 때만 성폭력으로 처벌하는, 성범죄 판단이 협소한 사회에선 상담가조차 쉽게 일탈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엔 내담자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 심리학자의 비율이 1977년엔 12.1%(홀로이드, 브로드스키 박사 연구)였다가 23개 주에서 상담실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등 엄격한 법적 제재가 시작되면서 1989년엔 0.9%, 1994년 3.5%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23개 주 대부분은 내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더라도 심리상담가를 처벌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고소된 ‘상담실 스캔들’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이번 사건에서 정신분석가는 “(내담자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모두 로맨스였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상담실 로맨스는 없다. 내담자의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했던 상담가만 있을 뿐이다. 치료는, 내담자는 상담가를 믿고 정신적 약점들을 모두 털어놓고 상담가는 내담자를 위해서만 이 정보를 활용한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이다. 상담이 진전될수록 내담자는 상담가를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 부모님이나 형제, 스승으로 투사하기 때문에 상담가의 말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상담학회들이 윤리강령에서 상담가가 내담자와 사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치료자-환자 관계가 상담실 밖에서 이어지면 착취로 바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권력 불평등을 기반으로 한 성관계를 우리는 폭력이라고 부른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mifoco@hani.co.kr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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