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전당대회’. 1968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일컫는 말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미국 정치사상 가장 극적이고 파장이 컸던 전당대회가 바로 이 대회다. 그해 8월 열린 전당대회에선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상했다.
험프리는 경선 중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엔 단 한차례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당대회장 투표에서 간신히 과반수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들의 조직적 도움으로 대의원 표를 싹쓸이한 덕분이었다. 반면에 ‘베트남전 반대’를 내걸고 프라이머리에서 일반 당원·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은 아깝게 패했다. 전당대회장 바깥에선 매카시를 지지하는 반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여파는 컸다. 휴버트 험프리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대선 뒤 민주당은 ‘맥거번-프레이저 위원회’를 구성했다.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막는 게 당의 존립에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 지도부가 지명하는 대의원이 전체 대의원 수의 10%를 넘지 못하게 하고 경선에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프라이머리를 대폭 확대하는 등의 정당 혁신이 이뤄졌다.
요즘 미국에서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재 전당대회란, 경선에 참가했던 후보나 중진들이 전당대회장에서 대의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는 방식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것이다. 중진들이 동의하는 후보에 표를 몰아줄 수 있지만, 가장 많은 밑바닥 지지를 얻은 후보는 탈락할 수도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문제가 많은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이 방식으로 배제하고 싶어 한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형식은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재판인 셈이다. 전당대회의 역설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