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전체 12권 중 제6권을 읽는 중이다. 지난해 처음 국내에 완역 소개된 <화산도>는 재일조선인 망명 작가 김석범이 필생을 다해 쓴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1976년부터 1997년까지 스무 해 동안 원고지 3만장 분량으로 쓴 이 작품은 1948년 제주 4·3 사건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대하소설의 시대가 끝났다고 회자되는 시절에, <화산도>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는 뜨거운 문학적 실체라 할 수 있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느낀 소감을 말하자면, 내내 “고난의 역사는 고난의 말로 써라”라고 일갈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온전히 실감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망명지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1948년 제주 4·3 사건을 전후로 한 ‘조국’의 분단 과정을 침통한 눈으로 응시하고자 한 작가의 고뇌가 행간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고향인 제주 현장 취재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허구’로 꾸며진 <화산도>는 문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언어로 역사적 진실의 실체에 이르고자 한 작품이다.
‘4·3의 완전 해방’을 염원하는 김석범의 집요한 작가적 탐구는 삼십대 시절에 쓴 세 편의 연작소설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제주의 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까마귀의 죽음>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간수 박서방>(1957), <관덕정>(1962) 같은 연작과 일제말 식민주의와 친일 문제를 다룬 5편의 초기 중단편이 묶였다. 이 연작에 나타난 주요 모티프가 훗날 <화산도>의 원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까마귀의 죽음>에 등장하는 이상근과 정기준이 <화산도>에서 이방근과 양준오로 ‘변주’되는 식이다. 남로당 측 인물뿐만 아니라 ‘서북’을 비롯한 우익 측 인물과도 교류하는 <화산도> 속 ‘이방근’의 형상화는 초기작과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화산도> 연구서를 집필한 일본인 학자 나카무라 후쿠지는 “이방근의 설정은 <화산도>를 대장편 소설로 만들기 위해서 불가결한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이젠 망각해도 좋은 사건이 되었는가. <화산도>를 읽으며 나는 그런 견해에 단호히 반대한다. 학살 암매장 터를 조사 발굴하고, 정부 차원에서 진상 보고서를 작성하고, 4·3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국가 기념일을 제정해 추모하는 행위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그날의 실체적 진실은 기념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하는 자들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석범이 지난해 재출간한 <까마귀의 죽음> 서문에서 정뜨르를 비롯한 암매장 지역 표기가 암매장(暗埋葬)이 아니라 ‘암매장(暗埋藏)’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도 그것이리라.
누가 제주의 4월을 아름답다 하는가. 4월의 제주는 풍경 너머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할 것을 속삭여주는 것만 같다. <화산도>를 읽다보니, 제주 갈 때 자주 찾는 관덕정 일대 구도심 지역이 전혀 새로운 실감으로 육박해온다. 까마귀떼가 소용돌이치는 하늘 밑에서 끝없는 죽음의 행진이 이어지던 그날의 살풍경했던 관덕정을 상상한다. 소설 <관덕정> 속 허물영감이 목 잘린 주검 위에 한 송이 ‘동백꽃’을 바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다시, 잔인한 4월이다. 평화와 인권의 교과서인 <화산도>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잔인한 4월의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망각에 저항하기 위하여.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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