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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복종의 탄생 / 서해성

등록 2016-03-25 19:18수정 2016-03-25 20:20

케플러네 어머니는 마녀였다. 사실상 두 번 마녀재판을 받는 데 대략 6년이 걸렸다. 이 천체학자는 마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시력이 약한 눈으로 별점을 쳐서 재판비용을 보태야 했다. 독일 농민봉기와 30년전쟁은 마녀를 양산해냈다. 권력은 사회 위기를 의심과 증오를 내세운 야만으로 다스렸다. 마지막 마녀가 나오려면 아직 백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마녀는 별에 관한 한 아들의 스승 중 하나였다. 마녀의 아들은 별들이 우주를 떠도는 길과 위치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

헨젤과 그레텔은 매부리코를 가진 마녀를 빵 화덕으로 밀어넣었다. 마녀네 집은 빵과 과자가 붙어 있는 뜯어먹을 수 있는 식용 주택이었다. 그 마녀가 빵 만드는 기술이 제법 좋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림 형제는 마녀가 없다는 것을 끝내 해명해주지 않았고 마녀 이야기는 동화로 둔갑해서 200년 넘게 널리 전승되고 있다. 다만 숲으로 도망가서 살던 빵 굽는 마녀라고 불린 여인에 관한 재판기록이 발견되고 또 그 식구들이 생활하던 3층짜리 집이 지금껏 남아 있는 게 확인된 건 그닥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쨌든 그는 마녀인 채로 불구덩이에서 죽었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동안 조선에는 상투 튼 길삼봉이 있었다. 길삼봉은 조선을 피로 쓸고 간 존재다. 빨갱이 사냥 몇백년 전에 벌써 길삼봉 색출이 있었다. 선조에서 광해군 때까지 적어도 마흔 번 이상 길삼봉은 실록에 등장하고 있다. 이자는 흰 수염 뻗친 영감인가 하면 청년이었고, 사대부인가 하면 씨종자 없는 한낱 종놈이었다. 중놈이었고 무당이었고, 신출귀몰했고 멈춰 있었고 숨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천하는 공물이라고 외쳤다는 정여립이었고 이름이 같은 까닭에 조선초에 이미 죽은 삼봉 정도전이었고, 고부에 사는가 하면 지리산에 오르고 문득 계룡산에서 닭벼슬을 세고 있었다.

길삼봉은 사람이었으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생생한 구체일수록 연기 같은 허상이었다. 그렇다고 귀신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달라붙을 수는 있었다. 길삼봉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뻗댈수록 길삼봉이 되는 기이한 존재였다. 그 이름이 스쳐가기만 해도 파멸이거나 대개는 죽음뿐이었다.

길삼봉은 팔도에 두루 살았고, 그러므로 팔도에 부재했다. 그는 부재하는 것으로 존재했다. 부재했으므로 부재를 입증할 길 없는 모든 중심에서 부재로써 존재하는 권능을 발휘했다. 그 실체는 의심과 공포였다. 의심은 칼로 베어도 피가 나질 않고 총으로 쏘아도 두려워하질 않는다. 의심의 유일한 장점이다. 길삼봉이 그 의심을 근육으로 삼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마녀가 죽지 않고 문명사회에서 매카시즘으로 부활했듯 길삼봉은 상투를 잘랐달 뿐 의심의 씨앗을 뿌리면서 다시금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공포와 불안을 무기로 군림하는 권력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길삼봉을 기르고 있다. 세금을 내는 건 공포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 공포를 대중에게 전가하고 판매하라는 게 아니다. 테러로 500명 가까운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왜 법 제정을 정작 의회에서 부결시켰을까. 테러는 권력자의 무능을 문제 삼아야지 그 예방적 책무를 국민에게 떠넘기거나 이를 이유로 주권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의심과 공포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어느 시대든 감시와 복종이다.

길삼봉의 아침밥은 의심이고, 점심밥은 불안이며, 저녁밥은 공포다. 오늘 길삼봉의 거처가 거기다. 복종을 일용할 관습으로 제공하면서.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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